나를 일깨워준 이
이 세상 엮여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씹을 일도 참 많은데
씹는다는 걸 좀만 더 곱씹어 보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갉는다는 것
건넛집 술주정뱅이 아재 싸움 말리다
스무 살배기 대문니 하나 애꿎게
한여름 밤 날아든 주먹에 맞아 죽었다
그날 밤새도록 나는 아재를 씹다가
그도 모자라 아재 주먹 질근질근 씹다가
새벽녘에는 입소문 듣고 줄줄이 달려온 이마저 바작바작 갈았다
그러자 어떤 이는 죽자고 울었고, 또 어떤 이는 히죽히죽 웃었다
입술 꽉 깨물고 서 있는 옆집 대문니
대문을 제아무리 걸어 잠그도 씹은 말은 술술 새나갔다
한솥밥 먹고 살다 헤어진 이들의 경계가 뚜렷해졌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나를 안주처럼 씹어댔고
쉬이 씹어 넘기기엔 버겁다고 여긴 아재뻘 되는 이들은
이보다 한술 더 떠 술을 연신 원망하며 씹어댔다
이 사이 잇몸은 대문짝처럼 두툼해졌다
말 물어 나르는 거조차 어눌하기 짝이 없는 대문니 눈치 보며
옆에서 일평생, 아니 이 평생 지켜본 이들은
그간 내가 야무지고 질긴 것들을 씹을 때마다
무지 아슬아슬했다고 날을 세웠다
환갑 줄에 아래쪽 앞니 세 대가 한꺼번에 훌쩍 빠졌고
윗니 아랫니 세대 차마저 훅 사라져버린 이 마당
이는 무얼, 누군가를 씹기만 하고 살아온 나를
무던히도 일깨워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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