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대가야 무덤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령高靈
닿은 인연 뿌리칠 수 없다는 한 생각 데리고
무덤 속으로 조용히 들어선다
가얏고 소리에 눈뜬 딸린 돌방 소녀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를 버리고 가시리잇고
옛 가사 한 구절 즈려밟고 지나간다
으뜸돌방 주인은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다
호롱불만 켜진 텅 빈 덧널 앞에서 한참 머문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나 저기나 속 썩기는 마찬가질 터
고마, 여기 한 살림 차리고 속 편하게 드러누워 볼까
아이쿠, 고령高齡
대가야 고분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해 저물기 전에 되돌아나갈 수 있을까
혹시, 저기 누워 있는 젊은 청년 벌떡 일어나
문이라도 닫아버리면 어쩌나
이럴 줄 알았으면
죽어도 이름 값하는 고령 한우 한 상 차려와
눈 뜨고 누워 계신 임금님께 넙죽 진상 올리고
새하얀 치마 분홍 저고리 곱게 차려입은 처녀에겐
고령 딸기라도 한 접시 맛보일걸
밭고랑 갈다 온 저 남정네는
나처럼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걸까 끌려온 걸까
가까이 다가가 막걸리 한 사발 건네고
예까지 온 연유가 무엇인지 진작 물어볼걸
그늘진 텅 빈 덧널에 호롱불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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