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처럼
김소연
약국에 갔다
신분증을 내밀고 신원을 입력한 후에 약사는 내게
공적 마스크 3장을 건넸다
손세정제는 없나요
내가 묻자 약사는 대답했다
우리도 구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서 교사가 사망했다고
빌딩 위 전광판에서 뉴스 앵커는 전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하고 수업을 하던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는 산책이 늘었다
나는 요리가 늘었다
나에게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
축제가 사라졌다
장례식이 사라졌다
재난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
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거짓말처럼 푸른 창공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테라스에서 나팔꽃이 손이 뻗어 코스모스를 감고 있었다
황조롱이가 나타나 앞집 지붕 위에 앉아있었다
뭄바이에 나타난 홍학과 함께
레인섬에 나타난 바다거북이와 함께
산타아고에 나타난 퓨마와 함께
손을 내밀어 페이크 악수를 한 후에
늠름한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사라진 내 뒷모습을
누군가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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