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문정희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놨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래 속의 얼굴 / 유홍준 (0) | 2021.02.14 |
---|---|
멀리 가는 물 / 도종환 (0) | 2021.02.14 |
때로는 물길도 운다 / 이영춘 (0) | 2021.01.14 |
눈물이 온다 외 1편 / 이병률 (0) | 2021.01.11 |
부지깽이 / 최정란 (0) | 202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