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온다
이병률
왜 눈이 온다, 라고 하는가
비가 온다, 라고 하는가
추운 날
전철에 올라탄 할아버지 품에는 작은 고양이가 안겨 있다
고양이는 이때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할아버지 어깨 위로 올라타고
사람들 구경한다
고양이는 배가 고픈지 울기 시작했는데
울음소리가 컸다
할아버지는 창피한 것 같았다
그때 한 낯선 청년이 주머니에서 부스럭대며 뭔가를 꺼내
작은 고양이에게 먹였다
사람들 모두는 오독오독 뭔가를 잘 먹는 고양이에게
눈길을 가져갔지만 나는 보았다
그 해쓱한 소년이 조용히 사무치다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안으로 녹이는 것을
어느 민족은 가족을 애도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외출할 때 옷깃을 찢어 표시하고
어느 부족은 성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성기의 끄트머리를 잘라내면서 지구의 맨살을 움켜쥔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심장에 쌓인 눈을 녹이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에 등불을 켠다
나는 하루 한 번 북극 항로를 지난다
시인이 전화를 해서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옆에서 그의 어린 아들이 울음을 말리는 듯한 기척이 들렸다
아들이 손으로 아버지의 전화기를 막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상황이 하도 그래서 나는 같이 울까 했지만
아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뭐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해서
이어붙여도 붙여지지 않아서
그게 시인이라서
뭐라도 쏟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울고 싶을 때가 그러한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더 중요하겠는데
어딘가로 여행중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견뎌야 하거나 견딜 수 없을 때
시차가 있거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기분 속에 빠져 있거나
특별히 답할 게 없거나 대답할 거리도 아니며
한 줄 적는 일도 곤란하거나
닿는 바람도 싫어지고
그런 게 있어서
한 노래만 열흘 동안 듣는 나를 때리고 싶거나
모든 것이 소망했음에도 깜깜하거나
누가 오래 아프거나
입을 여는 일이 서걱일 때
그럴 때가 있어서
어떻게든 이으려 애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모두를 없애는 것도 중요할 때
이기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중요할 때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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