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모래 속의 얼굴 / 유홍준

김욱진 2021. 2. 14. 22:23

모래 속의 얼굴

유홍준

 

 

해운대 백사장 여기저기에

얼굴들이

박혀 있다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머리통만 내놓고 온몸이 모래로 묻힌 사람들……

 

두어 삽 모래 끌어다 얼굴만 묻어버리면

주검―

영락없이 주검이겠다

 

검은 썬글라스를 끼고 모래 속에 누워

고요히 명상에 잠긴―

 

(오, 주검의 저 평온한 얼굴들!)

 

올 여름에도

해운대 백사장엔 인산인해,

 

벌거벗은 비키니 상주들과 문상객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마신다 주검 곁에서

무더기 무더기 평토제 지낸 음식과 술을 나누고 수박을 쪼갠다

 

어이쿠 이놈의 염천지옥―

잘못 걸어가다간

덜커덩,

주검의 얼굴을 밟겠다

땅 밖으로 불거져나온 주검의 얼굴을 밟고 기절초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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