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눈사람 / 변희수

김욱진 2021. 3. 3. 09:29

눈사람

변희수

 

 

녹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너는 얼음을 가졌고 나는 심장을 가졌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저 개는 살아있다고 영혼에는 색깔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그만 둔 말이 하얗게 쌓이고 쌓여서 우리의 입을 틀어막아버릴 때

드디어 한 뭉치 흰눈이 될 때

 

쌓이고 쌓인 말들은 어디로 던져야 하나요

처음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펄펄펄 눈은 내리고

펄펄펄 끓어 넘치는 것이 있어서

 

나는 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말을 던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돌팔매를 던져도 피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퍽퍽, 차디찬 가슴에 박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가능한 것을 물어보려다가

차가워졌지만

 

나는 잘 녹지 않으니까 어쩐지 고약한 사람 같고

희고 성스러워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눈이 부셔서

가장 먼저 녹는 사람입니까 하고 물어보았는데

입김이 닿은 곳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침을 흘리는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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