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담쟁이 넝쿨 / 황동규

김욱진 2021. 4. 28. 07:54

담쟁이 넝쿨

황동규

 

 

건물 벽에 그어지는 균열은 건물의 상처겠지.

서달산 가는 길에 만나곤 하던

낡기 시작한 빌라 콘크리트 벽에

번갯불 형국으로 조금씩 벌어지던 틈새,

지난해부터 검푸른 잎들이 기어올라 가려주기 시작했다.

포도과 담쟁이 넝쿨.

남의 상처 가리는 삶은 남는 삶이겠지.

색깔도 보는 마음 편케 검푸르네.

오늘은 까마중 같은 귀여운 열매까지 달고 있군.

 

걸음 멈췄다.

검푸른 잎들 속에서

잎 하나가 빨갛게 불타고 있었지.

벽의 균열 가리는 검푸름 일색 잎들 속에

저렇게 혼자 불타는 놈도 있었군.

잎 하나가 건물 벽을 온통 설레게 하는구나.

걸음 떼기 전,

이 세상 사는 동안 어떤 건물의 벽이

마음의 끈을 이처럼 세차게 당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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