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닫힌 창(窓)
유명순
저 혼자 산 공기가 두껍다
유리창 깊숙히 뿌리를 내린 먼지의 격자무늬
직각으로 교차한 문살무늬를 지워본다
풍경을 적시던 창, 가만 들여다보면
햇살에 낫을 벼리던 사내들은 간데없고
흑백사진 속에 갇힌 三代의 쑥스러운 웃음만
마른 창틀에 걸려 위태롭다
이따금씩 걸려드는 새털구름 사이로
노랗게 익은 햇살이
빈집의 젖은 추억을 빨아먹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안과 밖의 경계가 두꺼운 침묵 속에 안주하게 된것은,
굵게 금간 유리창이
툭툭, 상처의 비늘들을 적신다
백 년을 지나온 묵은 길같이
바람에 몸 긁히며 길들여진 세월만
가슴에 품고 삭이고 있다
풍경이 풍경을 적시고 있다
누군가 젖은 몸 빠져나간 자리마다
노을 가득 밑그림만 남았다
속내를 일 길 없는 오동나무 한 그루가
窓 두드리며 안부를 묻는다
웃자란 유리창의 기억이
꽁지 노란 새 한마리 푸드덕 날려보낸다
-심사위원 : 나희덕시인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강정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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