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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0 동서커피문학상]오희옥,조수일,김창희,김애란,조미희

김욱진 2011. 1. 2. 08:06

10회 동서커피문학상 詩부문

 

금상

 

택배를 출항시키다 / 오희옥

 

통영에서 수천 마리의 멸치 떼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종이 박스 모서리를 뚫고 출렁,

마룻바닥으로 쏟아졌다

멀미가 났을 것이다

 

해풍에 이마주름 말리시는 아버지

유자나무 열매에서도 지독한 비린내가 났다

내가 질색하며 뱉어버린 바다

토악질을 해도 늙지 않았다

해초에 몸을 감는 파도 따라

어망을 던지는 아버지

유자처럼 얼굴에 곰보자국이 선명했다

그때, 신음하는 물결

뜨겁게 할퀴어 찢어지는 파도에

잘게 부서지는 아버지를 보았다

 

목이 늘어진 아버지의 바다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달팽이관 안에서 탁, 탁 그물 터는 소리

거실 바닥으로 좌르르 쏟아졌다

종일, 멀미가 났다

 

 

 

은상

 

노을에 들다 / 조수일

 

대문을 열고 나오려다 멈칫, 숨을 죽인다

주차된 후미 귀퉁이를 잡고 바스라질 듯, 서있는 옷깃이 보인다

비둘기색 양복 바짓단 헐렁거림이 보여 온다

비스듬히 차체에 기댄 주렁이 보이고

주렁 끝 손잡이마냥 곡진하게 굽은 등이 보인다

노신사, 볼 일 보는 중이다

 

오줌발, 얼마나 곤궁스레 수척이 말랐는지 소리도 없다

뒷바퀴를 방울방울 새의 눈물, 그것처럼

타고 흘렀을 생의 끝자락이 보인다

비척비척 걸음을 뗀다

애가 타는지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해가 골목을 붉게 물들인다

잦은 잔바람에 이제는 노쇠해져 훌렁훌렁 넘어지는

집집마다 노송 한 그루, 지금 노을 속으로 들고 있다

 

문 틈새 담벼락 타고 막 피어오르던 넝쿨장미의 눈 가,

벌개진다

 

 

 

동상

 

가을, 번개 맞다 / 김창희

 

번개의 번뇌일까

느닷없는 번개의 외침이 생경스러운 이른 가을

굳이 물어오지 않아도 될 안부

번뇌를 쏟아 부어 온몸으로 건네 온 짜릿함

동맥을 타고 흘러내려 저만치 아랫도리까지 흘러내리는

오줌저린 후의 낯선 느낌의 혼란스러움

 

번개 맞은 가을은 옴짝할 수 없을 만큼의 소용돌이로

기력이 쇠한 채 긴 울렁임만 가득하고

드러누운 싯누런 들판이 을씨년스럽다

 

동상

 

위령가 / 김애란

 

  한삼섬 바닷길 고동줄무늬 같은 시간이 내 혈관에 감겨 돈다. 파도의 가슴은 비릿하다. 골육의 정은 바다 밑 산소처럼 목울대에 간절하다. 육신은 물위로 떠올랐어도 바닷말에 간간히 맺혀있구나! 갈매기 목청을 길잡이로 하여 여수 오동동으로 달려가는 길. 방금 막춤을 끝낸 동백꽃송이 알알이 꿰니 나라의 꽃으로 부활하는 성웅 이순신, 한산도가(閑山島歌) 내 애간장에 불을 놓는다. 땅위 붉은 꽃잎은 절정의 끝으로 떨어졌지만 우국충정의 이름 모를 꽃봉오리는 언제쯤으로 피워날까? 배 꽁무니로 쏟아내는 눈물, 해안을 지키던 함성, 하늘 까지 치솟던 북소리, 망부석이 부르던 애가. 물방울 모시적삼이라도 지어 입히고 싶다 하니 꽃구름의 심장이 햇살로 핀다. 제각각 섬들이 나를 붙잡고 제 혈육 보듯 눈들 반짝인다.

 

 

 

동상

 

바람의 관절 / 조미희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다

길고 긴 노동으로 관절이 닳아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바람도 그늘로 찾아 든 것이다

일광욕을 즐기는 구름을 밀고

다시 일을 나서려는 바람을

구름이 자꾸 더 쉬라며 유혹하는 한낮

망설이는 바람에 나뭇잎 일렁인다

구름을 밀려 바람은 다시 일을 나선다

조각을 내며 모양을 바꾸는 구름

가끔 메마른 땅에 물을 주기 위해

먹구름도 데려와야 한다

산 위의 너럭바위 젖은 등짝도 시원하게 말려주어야 한다

하루 종일 퍼트려 놓은 햇살을 끌어 당겨 챙겨 놓는 오후

자물쇠로 밤새 별빛 그물을 치고

커다란 조명등 하나 끌어다 놓는다

바람은 다시 넓은 바다로 가 칭얼거리는

바다를 잠재우느라 밤새 뜬 눈이다

새벽에 보면 시퍼렇게 멍든 바람 절뚝거리며 골목을 지난다

 

 

 

- 자료출처 : 마경덕 시인 블로그 <내 영혼의 깊은 곳>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박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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