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해설

2021 시문학 10월호 이달의 문제작-김욱진 『빈집·2』

김욱진 2021. 9. 28. 19:03

'모성', 지고지순한 사랑의 원형-양병호(시인, 문학평론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흙집

지문은 다 사라지고

방문 왼손 편 벽 언저리엔

지팡이처럼 짚고 드나든

손자국만 하나 쿡, 찍혀있다

백일 전 돌아가신 어머니

시집 올 때 신고 온 코고무신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있는 봉당 앞에서

무심코 지붕 올려다보니, 그단새 처마 밑은

온통 부동산 투기꾼들로 북적인다

거미는 얼기설기 줄을 쳐뒀고

땅벌도 간간이 날아들어

이곳저곳 갸웃거리고

자식새끼 줄줄 딸린 제비 부부는

집터고 뭐고 따져볼 겨를도 없이

애비는 써레질한 무논에서

지푸라기 다문다문 짓이겨 와

다섯 식구 살 집 한 채 짓는 중이고

어미는 새끼들 땟거리 구하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집 주인은 오간데 없는데

빈집에 큰 손은 잦아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머니 살아생전

너그 잘 있으면 됐다

집 걱정은 하지 마라, 그러셨는데

 

-김욱진,『빈집·2』전문

 

 이 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추모시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거주하던 집을 찾아가 어머니의 삶 혹은 사랑을 떠올리며 아쉬움과 추모의 정념을 표출한다. 어찌 보면 평생 살아온 집은 어머니의 삶을 온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아니 어머니의 평생이 저장 온축되어 있는 집은 어머니를 등가적으로 동일시하는 상징물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말한다. "집은 어머니 신체의 대리물이다. 어머니의 몸은 사람이 동경하는 최초의 주거이다. 인간은 그 속에서 안전했으며, 위안을 받았다." 이에 따르면, 이 시의 "빈집"은 어머니의 부재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표상된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가 부재하는 "빈집"을 찾아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한다. 그런데 화자는 어머니가 거주하던 "집"의 섬세한 관찰을 통하여 어머니의 모습을 재생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흙집"은 어머니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등가물이다. "흙집"은 어머니의 소탈하고 푸근한 존재 특성을 "흙"의 질감을 통해 효과적으로 환치한다. 또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이라는 수식구는 살아생전 어머니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환기한다. "지문은 다 사라지고"는 어머니의 고유한 개인적 삶의 흔적이 망실되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다만 어머니의 이승의 삶의 자취는 출입의 흔적을 드러내는 "손자국"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삶은 "지팡이처럼 짚고 드나든"의 표현을 통해 온전하지 못하고 병고에 시달린 것으로 인지된다. 화자는 어머니의 기억을 오로지 말년의 불편한 거동의 흔적으로 재생해내고 있는 것이다. "쿡"의 부사어는 화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아픈 기억의 강도가 매우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화자는 어머니가 살았던 집을 방문하여 "백일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한다. 마침 봉당 앞에 놓여 있는 "코고무신 한 켤레"는 어머니의 부재를 확인하는 매체로 인지된다. 그런데 그 신발은 어머니가 "시집 올 때 신고 온" 것이어서 어머니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도록 자극한다. 요컨대 어머니의 부재는 "코고무신"의 존재로 상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화자가 바라보는 "빈집"에는 어머니의 부재를 대신하여 "부동산 투기꾼들"이 현존하고 있다. 물론 이는 "거미, 땅벌, 제비" 등을 은유한다. 

 어머니가 없는 빈집에 거미, 땅벌, 제비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화자는 이러한 주객전도의 상황을 보고 어머니의 상실감을 재삼 확인한다. 아울러 제비 가족의 분주한 삶을 매우 섬세하게 관찰한다. "제비 부부"는 주거공간인 "집터"에 대해 신중한 관심을 기울일 틈도 없이 자녀 양육에 전념하고 있다. 아버지 제비는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담보할 "집 한 채"를 짓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사이 어머니 제비 역시 자식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매우 분주하게 노동한다. 이 풍경은 단순하지 않다. 화자의 삶의 이력을 환기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자는 이 제비 가족의 삶의 풍경에 얼비치는 자기 가족의 삶의 과정과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살아생전 집 주인인 어머니가 거주하던 빈집에 인적이 끊겨 허황한 분위기에 함몰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부재하는 빈집을 보전해야할 "걱정"도 일어나고 있다. 살아 있을 때 어머니가 항상 "집 걱정은 하지 마라"고 자식에게 당부하던 말을 떠올리며 "집 걱정"을 하고 있다. 여기서 "집"은 사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 자신을 함축한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의 "집"은 곧 어머니이고, 돌아가시고 난 뒤의 "집"은 사물로서의 집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부재하는 집에 대한 걱정은 사실 어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이다. 이 시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거주하던 "빈집"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추념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빈집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어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여 진솔한 시적 분위기를 성취하고 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빈집" 걱정을 통해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