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
이규석
비쩍 마른 아우
마른 땅에 뿌리내린 해바라기처럼
바람이 일 때마다 흔들거렸다
솟대 곁에 서서
살려 달라 목청껏 소리쳐도
그 말, 신작로 위로 나뒹굴었다
마른 목이 타들어가
폭우 쏟아지던 날
고향으로 돌아와 묻혔다
수의도 못 얻어 입은 몸
흙 이끼 덮고
가시투성이 두릅나무 두르고 있더니만
사십 년 만의 볕 바라기,
양지바른 소나무 아래로 새 집 지어 옮긴
아우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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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석 님의 ‘해후’라는 시편을 대하니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떠올려보게 되는군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요. 지연, 학연을 넘어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간의 인연은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만남이지요. 화자는 이승에서 만났다 헤어진 “바짝 마른 아우”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립니다. “마른 땅에 뿌리내린 해바라기처럼 /바람이 일 때마다 흔들거렸다”고요. “솟대 곁에 서서 /살려 달라 목청껏 소리쳤다”고요. 아마도 살아생전 아우는 키가 해바라기처럼 후리후리했고, 알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음을 짐작해봅니다. 솟대는 질병이나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워둔 장대였지요. 마을 사람들은 솟대를 수호신처럼 섬겼고 그 언저리는 성역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던 아우는 “폭우 쏟아지던 날 /고향으로 돌아와 묻혔다”지요. “수의도 못 얻어 입은 몸 /흙 이끼 덮고 /가시투성이 두릅나무 두르고 있었다”지요. 울컥, 울음이 쏟아지는 순간입니다. 화자는 가난이란 가난 몽땅 다 두르고 자연으로 돌아간 아우를 사십 년 만에 되살려 “양지바른 소나무 아래로 새 집 지어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아우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고 회상합니다. 죽어서까지도 음지에 머물던 아우를 양지로 옮겨준 형과의 인과 연은 분명 우연 아닌 필연이겠지요. 화자의 ‘해후’라는 시 한 편이 여기, 지금, 나에게까지 와 닿아 짠해지는 이유는 또 뭘까요?(김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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