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해설

물빛 37집 평설-주인, 돌아오다 / 고미현

김욱진 2021. 10. 12. 08:55

주인, 돌아오다

고미현

 

 

책상 위 삼각형 이름표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봄꽃이 피고 지는 동안

백년 은행나무는 숨죽이며 서 있다

닫힌 교문이 아슬아슬하게 열리는

초여름 아침

 

마스크 너머로 함박웃음 머금고

기쁨을 어깨에 멘 아이들은

들뜬 걸음으로 콩콩콩 들어선다

 

2학년 5반, 보고 싶은 얼굴들

울컥, 눈시울이 젖는다

 

주인이 주인으로 돌아온

때늦은 새 학년 첫날

마음은 푸릇푸릇 설레는 3월이다

 

눈빛으로 말하고

혼자서 놀아도

첨벙첨벙 바다를 누비는

가득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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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현 님의 시편은 우리네 삶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가를 간절히 짚어주고 있네요. 코로나로 개학이 늦어진 어느 초등학교 일상을 소상히 받아 적은 2학년 5반 담임 선생님의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집니다. 마음이 우울하거나 복잡할 때, 누구나 한번쯤은 자유롭게 뛰어놀던 초등학교 운동장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돌아가곤 하지요. 그곳엔 나 많은 은행나무 내외분 사이좋게 나란히 서계시고, 아이들은 그 아래서 꼬물꼬물 구슬치기 땅따먹기 딱지차기하며 수업시작 종이 치는 줄도 모르고 흙먼지 날리며 놀았지요. 텅 빈 운동장을 내다보신 선생님은 “책상 위에 아이들 삼각형 이름표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라고 느끼셨어요.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둘 아닌 하나의 동심으로 그려지는 순간입니다. 봄꽃 피고 진 그 운동장엔 백년 묵은 은행나무 한 그루 숨죽이며 서있네요. 손주 같은 꼬맹이들 얼굴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닫힌 교문이 열린 초여름 아침, 선생님은 “마스크 너머로 함박웃음 머금고 /기쁨을 어깨에 멘 아이들”을 설레는 3월처럼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가슴속 꼭꼭 숨겨둔 ‘아슬아슬’ ‘콩콩콩’ ‘푸릇푸릇’ ‘첨벙첨벙’이라는 의성어 의태어를 불러와 해맑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고 있어요. 그저 “눈빛으로 말하고 /혼자서 놀아도”, 학교 “주인이 주인으로 돌아온” 철 늦은 개학날 아침 장면이 한 눈에 선하게 와 닿으면서 참 행복해보입니다.(김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