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언덕
성향숙
오늘의 종착지는 언덕입니다
애프터눈 티 카페, 오후만 존재하는 계절
삼단 접시의 휴식이 나오고
나는 차근차근 올라가 언덕의 체위를 호흡합니다
하이힐처럼 우뚝 흥겨운 바람입니다
수다 떨기 좋은 이파리와 노랑국화가 흘러가는 언덕,
멈추면 눈 감기 좋은 햇살이 스며듭니다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24층에서 뛰어내린 영화배우가 여기 있다는데
죄책감 없이 호흡합니다
오랜 발목이 저릿합니다
오후만큼 달콤한 죽음을 수혈하기 좋은 언덕
굳은 발바닥은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응답 없는 해피투게더의 비상구는 나른한 햇살이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미남 배우를 만납니다
마지막 접시가 추가되고 근근 이어지는 오후지만
배우와 나의 간격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고용와 그늘을 구분 짓는 언덕을 넘어
관념들, 침묵들, 안녕들이 흔들리고
이곳을 나가면 어둠의 계절을 만납니다
죽음의 달콤함은 오래 입맛에 남아 음미됩니다
(2021문예바다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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