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소가죽 소파 / 정익진

김욱진 2021. 10. 22. 22:28

소가죽 소파

정익진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 사들였다.

거실에 가둬 놓고 우리는 소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뻣뻣했던 소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소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의 등 뒤에 누워 잠들기도 하고 소의 배 위에 올라타

오랜 시간 TV도 보고 책도 읽고 간식도 먹었다.

 

특히 우리 집은 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각자의 몸무게를 던진다거나 옷을 있는 대로

걸쳐 놓기도 하고 과도를 잘못 던져 목 부위가 찔리기도 했다.

 

등뼈가 휘어질 정도로 심한 장난을 친 때문인지

소의 발목이 부러졌다. 임시로 부목을 대어 주고

붕대만 감아주었지 제대로 된 치료는 해주지 않았다.

 

소는 소였다. 한마디 아프다는 소리 하지 않았다.

소가 우리 집에 온 지 십 년이 넘어간다.

소의 껍질이 완전히 낡아버렸고 등가죽은 해어지고

복부가 터져 내장까지 튀어나올 지경이다.

 

거칠게 꿰맨 상처 자리까지 뜯어져 보기가 안쓰러웠다.

우리는 소의 폐기처분을 결정했다.

 

그러나 온전히 그냥 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껍질 일부를 벗겨 내거나

칼로 도려내었다. 비로소 소는 너덜너덜해졌다.

 

소가죽 가방과 핸드백은 아내의 몫이었고,

나와 아들은 각각 소가죽 지갑을 갖게 되었다. 

(2021 문예바다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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