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오늘의 특선 요리 / 김기택

김욱진 2023. 7. 14. 22:05

오늘의 특선 요리

김기택


높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독수리 날개의 넓고
튼튼한 부력만을 골라 냉장 숙성시킨 후에 구웠습니다.

하루 중 가장 차갑고 맑은 시간에 터져 나오는 새벽
닭의 힘찬 울음만을 엄선하여 바삭바삭하게 튀겼습니다.

시속 111킬로미터로 달리는 치타의 근육이 만들어
내는 팽팽한 탄력만 가려내 담백하게 고았습니다.

발톱과 이빨이 간지러워 우는 고양이의 갓난아기
울음에서 애절한 눈빛만 솎아내 고소하게 볶았습니다.

수천 미터 밖 물살의 힘과 방향을 읽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푹 끓여 고감도 감각만을 진하게 우려냈습
니다.

두근거리는 토끼의 심장에서 연한 놀람과 어린
두려움을 떨림이 살아 있는 그대로 발라내 갖은
양념에 무쳤습니다.

주인을 향해 막무가내로 흔들어대는 개 꼬리에서
명랑하게 들뛰는 유전자만을 갈아 즙을 냈습니다.

씹지 않아도 녹아서 핏줄로 전율하며 스며드는 육질
과 육즙의 싱싱한 발버둥만을 양념으로 사용했습니다.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곱추」가 당선
시집『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껌』『갈라진다 갈라진다』『낫이라는 칼』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 경희문학상, 편운문학상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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