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한 잎
박정원
놓칠 게 뭐란 말인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놓은 게 아니라 놓아야만 될 것을 놓았는지도 모를 일,
하필 내가 보고 있는 그때 보내려고 막 작정했었는지도 모를 일,
보고 있다고 질 것이 지고, 지지 않을 것이 지지 않는 건 아닌데
서릿발 뒤집어쓰다가 그만 어미 손을 놓치고야마는 핏줄과 핏줄 사이
눈치도 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박새 한 마리,
하루에도 수천 번 흔들다 놓는 그 자리, 환한 자리 눈부신 자리
오동꽃
박정원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누가 볼세라 입고 있던 옷을 아프게 물어뜯어
깔아주고 덮어주는 어미
순하디순한 줄만 알았더니
살인도 서슴지 않는 母性이었더냐
외간남자를 봐왔다고 툭하면 폭언폭행에
틈만 나면 새끼들에게 해코지하는 남편을
눈 감짝할 사이에 물어죽이고 말았다
한 사나흘 지났을까
출산후유증인지 살상에 대한 죄값을 치루는 건지
아니면 독초라도 먹었는지
어미토끼마저 죽임을 당하였다
엄마젖을 먹지 못한 핏덩이 다섯 마리도 이내
버얼겋게 눈뜬 채 떠난, 엄마의 멀고먼 그 길을
줄줄이 뒤따라갔다
오동꽃그늘이었다
가슴통증 일 때마다 명주실처럼 뽑아내고 싶었던
아주 여리고 아린 꽃이 뚝뚝 지던
동구 밖 외딴집, 내 사랑하는 누이무덤 근처였다
―시집『 뼈 없는 뼈 』(종려나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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