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재산
최서림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빈 하늘은 내 것이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새털구름도 내 것이다.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내 것이다.
너무 높아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다 내 것이다.
새도 듣고 바람도 듣고
천산남로 어떤 종족은 아직도,
땅이나 집을 사고팔 때
문서를 주고받지 않는다.
도장 찍고 카피하고 공증을 받은 문서보다
사람들 사이 약속을 더 믿는다.
돌궐족이 내뱉는 말은
하늘도 듣고 땅도 듣고 새도 듣는다.
낙타풀도 지나가는 바람도 다 듣고 있다.
글자는 종이 위에 적히지만
말은 영혼 속에 깊숙이 새겨진다.
바위에다 매달아 수장시켜버릴 수도
불에다 태워 죽일 수도 없는 말.
세상의 안이면서 밖인
나의 고향집, 엄마의 몸은
이 세상 안이면서 밖이다.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나오는
태아는 산모만큼 목숨을 건다.
세상 안에서 쌓이고 쌓인 아픔이
자궁을 빠져나올 때만큼 커질 적이면,
엄마의 무릎 사이 머리를 파묻고
첫울음 같은 울음을 울고 싶다.
그 울음을 통해 세상 바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울음이 세상보다 더 큰 당신 안에서
동그랗게 웅크리고 들어앉으리라.
내 살과 피가 마지막 눈물로 삭아내려
무덤 속을 적실 때까지,
이 세상의 안과 바깥에서
나의 눈물을 다 받아주는 당신,
아무리 다가가도 고독해지지 않는 당신.
손을 펴다
우리는 우리의 빈손에
얼마나 많은 걸 갖고서 태어난 지 모르고 산다.
우리의 손 안엔 산과 들이 들어차 있고
하늘과 강이 푸르게 푸르게 펼쳐져 있다.
자신만을 위해 손을 꽉 움켜쥐고 있으면
해가 뜨지 못해, 산도 들도
캄캄한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을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펴주면
빛 속에서, 온 세상이
그 안으로 다시 들어와 넘실거린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다 빌려서 쓰다 갈 뿐, 내 것은 없다.
손 안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다
두 손을 다 펴고 간다.
生의 정면
앞모습은 웃고 있지만
뒷모습은 울고 있다.
진실은 초라한 뒷모습에 있다고
뒷모습만 그리는 사람이 있다.
짓궂은 나는 염치도 없이
곧잘 사람의 정면을 응시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포장된 앞모습,
생의 혼돈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진실은
뒷모습만큼이나 쓸쓸하다.
그 무엇으로도 위장할 수 없는 눈빛 때문인가,
생의 정면에서 전해오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연민이 더 눈물겹다.
이중섭론 1
ㅡ 내 안의 1950
그의 소는 일자무식 우리 큰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소는 징용에서 탈출한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그의 소는 비슬산서 빨치산 하다 죽은 순이 삼촌을 닮았다.
그의 소는 새끼를 잃고 울부짖는 영태 아버지를 닮았다.
무수한 목숨들이 젖줄을 대고 있는 백두대간을 닮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의 소,
핏빛 역사 앞에서 망연자실한 나의 자화상이다.
이중섭론 2
ㅡ 내 안의 1950
전쟁 중인데도 그의 서귀포엔
삼백육십오일 복사꽃이 지지 않는다.
복숭아만한 보물을 단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복숭아나무에 원숭이처럼 매달려 휘파람을 분다.
은종이를 펴고 있는 남자를 닮은 아이들은
흰 새를 타고 바다 위를 날아다니곤 했다.
군함도 전투기도 홍군도 백군도
들어오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바다.
나이
백합은 젊어야 백합이지만
호박은 늙어서도 호박이다.
속이 꽉 찬 애호박보다
속이 텅 빈 늙은 호박이 더 달큰하다.
늙은 호박 안에는 달맞이꽃만이 아니라
방울새도 버들치도 살고 있다.
늙은 호박을 싣고 온 저 노인의 쭈글쭈글한 몸속에
고향의 산과 강이 따라와 슬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직 늙어보지 못한 서울의 아이들이
늙은 호박과 노인을 고대 유물인양 보고 지나간다.
돌아가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흑백사진을 통과해야 한다.
LP판으로 배호, 남진, 나훈아를 돌려야 한다.
까까머리 동무들과 학교 땡땡이 치고
송사리랑 도시락 나눠먹던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슬레이트와 콘크리트가 점령하기 전 봉인된 시간 속으로 돌아가려면
두꺼비랑 헌집 주고 새집 받는 모래사장을 건너야 한다.
시간이 개울물처럼 돌고 돌다가
낡은 영화 필름처럼 멈추어서기도 하는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풀무치와 나란히 낮잠을 즐기는 원두막에 들러야 한다.
참외 서리쯤 슬쩍 눈감아 주는 사람들 앞에서
명함 내놓기 머쓱해지는 그곳에 끼어들려면,
살구나무 성벽을 지키고 있는
깐깐한 참게와 가재가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老시인
입속으로 가만히 궁글려 보는
노시인이라는 말, 함박꽃 냄새가 난다.
나이가 쌓여 연륜이 아니라 탐욕이 되는 시대
잘 익은 말이 시간에 녹슬지 않듯이
잘 영근 生은 때가 타지 않는다.
'노인'에게서는 고여 있는 물 냄새가 나도
'노 시인'에게서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난다.
양지쪽 햇볕처럼 따사로운
노시인이란 말,
빳빳한 내 머리가 수그러진다.
아카시아
시인은 아카시아나무다.
지킬 것이라곤 자존심 하나뿐인데
늘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
땔감으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카시아가
나무로 인정받는 것은
순전히 우유 빛 살결을 지닌 꽃 때문이리라.
항아리 미인을 닮은 저 꽃 타래 때문이리라.
나무에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 때문에
고작 며칠밖에 가지 않는 그 향기 때문에
시인도 세상에서 붙어먹고 살 수 있지 않는가.
다들 둥글게 살아가라고 대신 울어주다
스스로는 모가 나버린 꺼칠꺼칠한 삶,
아카시아 꿀은 마르지 않는 사랑처럼
하늘 깊숙이 감춰져 있다.
친구로 삼기엔 너무 먼 나무다.
애써 빙 둘러서 가고 싶은 나무다.
고준희와 고정희
압구정동엔 정신과가 없고
성형외과와 피부과뿐이다.
고준희 몸은 블루칩이고
고정희 시는 부도난 회사의 주식이다.
시집들이 창고에서 폐지로 묶여 팔려도
고정희 시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의 시마저 죽는 날,
세상은 해골로 지어진 낙원이 되리라.
고준희가 소나기 그친 뒤의 햇빛이라면
고정희는 환부같이 달무리 진 밤의 색깔이다.
당고개 블루
그 구역은 언제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이 도시의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다.
개들도 나뭇잎들도 가난해서
행인의 눈치를 살피느라 잠잠하다.
내 인생의 한 토막을 닮은 그 구역은
언제나 잿빛을 머금은 푸른빛이다.
산꼭대기까지 계단이 나 있는 동네,
원색 치마를 입고 뒤뚱거리는 노인들은
호흡의 중심이 턱밑까지 올라와 있다.
절과 점집만큼이나
개척교회가 많은 동네,
강남서 이사 온 스타 정치인이
굽실굽실 거리며 명함을 돌린다.
연탄가스가 잘 빠지지 않는 비좁은 골목,
폐지 줍는 할아버지 리어카 뒤로
버려진 개들이 고아처럼 따라다닌다.
야만의 시대
공납금 밀리면 수업도 못하고 집으로 쫓겨 갔었다.
식목일에는 앞산에서 뽑은 소나무를 뒷산에다 옮겨 심었다.
모조리 말라죽어버렸다. 앞 다퉈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댈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한다고 따귀를 맞았다.
가발 쓴 낯선 얼굴들이 강의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땐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기 글을 자기가 알아서 검열했다.
삼청교육대가 잘하는 짓이라고 나발 불던 사람들.
데모하다 잡히면 콘크리트 바닥에
죽은 개 끌려 가듯 질질 끌려 갔다.
용산참사가 그저 뉴스 속의 참사일 뿐,
철도파업이 내 밥그릇과는 상관없는 일일 뿐,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해버린
오디세우스 부하같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99프로의 분노에 동조하면서도
홈쇼핑으로 일상의 구멍을 메워보는
망가진 안락의자 같은 삶.
어제의 야만은 오늘의 야만을 낳고
보이는 야만은 보이지 않는 야만을 낳는다.
삼천포
몸에 항구를 지닌 여인들은 사월이면
엉덩이가 삼천포 앞바다 만해지곤 했었다.
쫓기는 남자들이 살그머니 들어와
새우처럼 웅크리고 자다가곤 했었다.
무언가를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듯,
죽어서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갈치처럼 날을 세워 잠들곤 했었다.
NL도 PD도 몰라서 더 큰 여자들,
여자가 아닌 여인들의 바다가 있었다.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는 바다.
완장
어떤 색깔이든, 완장이 채워지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늑대가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완장을 찬 그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도처에서, 킁킁거리며 어슬렁거린다.
시베리아 늑대만큼 재빠르게,
법 위에 올라타서, 법을 주무른다.
늑대에게 한번 찍혀서 물리기만 하면
그 누구도 벗어날 재간이 없다.
이미 죽은 시체까지 물어뜯는 늑대들,
완장이 벗겨지면 이빨 빠진 똥개가 된다.
사막
너와 나 사이는 사막이다
낙타도 낙타풀도 없는 암석사막뿐이다.
물기 하나 없는 너의 말,
선인장도 뿌리 내리지 못한다.
날카롭게 쪼개진 돌멩이 같은 너의 말 안에선
방울뱀들만이 검은 혀를 날름거린다.
갈라진 혀로 동시에 두 말을 한다.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서로 다른 방언으로 할퀴고 물어뜯는다.
더 이상 상할 속도 없는 너와 나,
뒤엉켜서 서로 개미지옥으로 밀어 넣고 있다.
김수영 문학관
김수영 시는 안주도 없이 들이마시는
2리터짜리 소주병이다.
술 취한 기사가 모는 버스 같은 역사에 치어
박살난 소주병이다.
뺑소니치는 역사의 바퀴에 박힌 병 조각이다.
아스팔트도 뚫고 올라오는
여리디여린 풀잎이다.
닭똥도 안 만져본 자들이 지어준 문학관에
김수영 자신은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다.
침을 퉤, 퉤, 뱉고 지나가버린다.
포로수용소에서 생니까지 뽑아버린
그의 진짜 문학관은 요새도,
벽에다 자신을 계란같이 던져버리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들 속에 숨어 있다.
구수동 닭이 낳은 계란 같은 시들,
늘 역사의 왼편에서 쓸쓸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대를 이어 부화하고 있다.
울음통
울룩불룩 균형이 안 잡힌 내 몸통에는
아담 이래 온갖 울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술 취한 노아의 붉은 울음이 유전자로 내려오고 있다.
북방 초원의 밤바람소리 같은 울음이 알을 까고 있다.
황소같이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울음이 소리 죽이고 있다.
메마른 하천 밑을 흐르는 개울물 같은 어머니의 울음이
대를 이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노란 리본이 별처럼 매달려 있는 부두에서
캄캄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보면서도
울음이 터져 나오지 못해 숨이 턱, 턱, 막혀오는데,
가슴을 쥐어뜯으며 쏟아내어야만 살 것 같은데,
그 많던 눈물이 어디로 다 숨어버렸는지
꼬리조차 잡히지 않는다. 몸 안에서는
모래바람만 닳고 닳은 바위를 사납게 때린다.
새벽 비에 씻긴 쑥부쟁이, 구절초같이
내 영혼 드높게 씻겨줄 눈물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밤새 머리가 빠개지도록 써낸 내 시에
아내 가슴 속 불덩이를 식혀줄 눈물이 들어있기나 한지.
하늘과 땅 사이를 헤매는 울음들이 눈물로 떨어져
제 갈 길 찾아갈 지도가 희미하게나마 들어있는지.
수 천 년을 두고 떨어진 눈물을 받아먹고 피어난,
쓸쓸해서 해맑은 가을 야생화 같은 시가 보고 싶다.
마른 울음
눈물이 배어 있지 않은 울음은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처럼 붉다.
가슴의 불덩이가 눈물을 태워버렸는지
가슴을 치며 울어봐도,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는다.
자식을 잃어본 최초의 아비도 그들처럼
마른 울음을 울었을 것이다.
눈물은 광장의 시든 풀잎도 살려냈는데
마른 울음은 콘크리트도 갈라터지게 한다.
깨어지고 짓뭉개진 生들이 받아먹고 일어설 수 있는
우주보다 큰 눈물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드디어 귀향 한다고
해방된 듯이 그대는 수다스럽고,
나는 부러워하면서도 왠지
쓸쓸하게 손을 흔들어 떠나보내네.
빈손으로 귀촌 한다고
쫓기듯 서울에서 빠져나간다고
낮달같이 희미하게 웃는 그대를 보내고
낙엽 진 거리의 플라타너스처럼 우두커니 서있네.
어딜 가나 인간 세상 안쪽인데,
무한경쟁의 갈퀴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틈으로 숨어들기를!
낙엽처럼 떨어진 희망 쪼가리를 밟으며
나는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리.
이곳에 있어도 영원히 이곳에 속하지 않는 망명자,
자본의 심장부에다 '말'폭탄을 던지는 시인은
이 시대 마지막 레지스탕스라네.
이 밤 돌아오지 못할 카테리니로 떠나는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일세.
내 심장이 버티는 한
내 유일한 무기 볼펜과 노트를 가지고서
희망 없는 이 땅에 살아남아 있으리.
절망 한가운데로 실뿌리를 뻗어 보리.
눈물은 둥글다
웃음은 구겨질 수 있어도
눈물은 언제나 둥글다.
하늘로 올라간 웃음은
땅에 떨어져 썩을 수 있어도,
땅에 떨어진 눈물은
향기 나는 기도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눈물은 한 생애를
둥글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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