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발이 하는 말 / 김욱진

김욱진 2024. 10. 22. 15:05

발이 하는 말

 

아, 어디쯤일까

길을 걷다

폐휴지 한 리어카 싣고

언덕길 오르는 맨발을 보았다, 나는

들었다, 발이 하는 말을

발가락은 바짝 오므리고 뒤꿈치는 쳐들고

그래도 뒤로 밀려 내려가거든

헛발질하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혓바닥 죽 빼물고 땅바닥 내려다봐

써레질하는 소처럼

발바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바닥과 바닥은 통하는 법이야

그래, 맞아

둘이 하나 된 바닥은 바닥 아닌 바닥이지

손바닥처럼 그냥 가닿는 대로

가닿은 그곳이 바닥이니까

여기, 지금, 나는

바닥 아닌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발

바닥을 보았고

바닥없는 바닥

아슬아슬 가닿은 발

바닥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소리 들었다

비 오듯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사이로

리어카 바퀴가 미끄러져 내려갈 적마다

발바닥은 시험에 들었다

땀 한 방울 닿았을 뿐인데

그 바닥은 난생처음 가닿은 바닥

발가락과 발뒤꿈치는 땀방울 밀고 당기며

발바닥이 바닥에 닿았다고

어느 바닥인지 알 수 없는 그 바닥

간신히 가닿고 보니

바닥이라는 바닥 기운 다 끌어당기고 가는 저 발

바닥은 바다보다 깊고 넓적하다

 

(2024죽순 5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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