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
김욱진
엄니 살던 흙집에 갈 때마다
고양이 먹을거리 주섬주섬 챙겨간다
어떤 날은 식구들 발라먹은 생선 가시 조심스레 가져가
애간장 녹이듯 나눠주고
어쩌다 치킨이라도 한 마리 시켜먹은 날은
바삭거리는 껍데기 날개뼈 오도독뼈에다
고소한 냄새까지 듬뿍 담아가
엄청 큰 보시하듯 훅 던져주면
녀석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한 동가리씩 오도독오도독 씹어재끼고는
땅바닥 뒹굴다가 히죽히죽 웃다가 날 보고 꾸벅!
것도 재롱이라고 다음날은
아침상에 오른 프라이한 계란 노른자 집사람 몰래 숨겨가
노랑나비 날갯짓하듯 한 조각씩 나풀나풀 날려주고
그래서인지,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동네 고양이들이 텅 빈 집으로 우르르 몰려와
젖먹이 녀석들은 대놓고 야옹, 야옹 졸라대고
나먹은 녀석들은 내 눈치 살살 보며 입맛 쫄쫄 다신다
먹이에 길들여진 고양이들
어느새 나만 가면 먹잇감처럼 쳐다보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참 묘하지
그 먹잇감이 나의 먹이처럼 자꾸 아른거려
이젠 고양이 먹이가 나의 먹이 되어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먹이사슬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2024 대구문학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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