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묘연 / 김욱진

김욱진 2024. 5. 18. 09:09

묘연

김욱진

 

엄니 살던 흙집에 갈 때마다

고양이 먹을거리 주섬주섬 챙겨간다

어떤 날은 식구들 발라먹은 생선 가시 조심스레 가져가

애간장 녹이듯 나눠주고

어쩌다 치킨이라도 한 마리 시켜먹은 날은

바삭거리는 껍데기 날개뼈 오도독뼈에다

고소한 냄새까지 듬뿍 담아가

엄청 큰 보시하듯 훅 던져주면

녀석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한 동가리씩 오도독오도독 씹어재끼고는

땅바닥 뒹굴다가 히죽히죽 웃다가 날 보고 꾸벅!

것도 재롱이라고 다음날은

아침상에 오른 프라이한 계란 노른자 집사람 몰래 숨겨가

노랑나비 날갯짓하듯 한 조각씩 나풀나풀 날려주고

그래서인지,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동네 고양이들이 텅 빈 집으로 우르르 몰려와

젖먹이 녀석들은 대놓고 야옹, 야옹 졸라대고

나먹은 녀석들은 내 눈치 살살 보며 입맛 쫄쫄 다신다

먹이에 길들여진 고양이들

어느새 나만 가면 먹잇감처럼 쳐다보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참 묘하지

그 먹잇감이 나의 먹이처럼 자꾸 아른거려

이젠 고양이 먹이가 나의 먹이 되어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먹이사슬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2024 대구문학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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