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그놈의 애 / 김욱진

김욱진 2024. 7. 11. 11:28

그놈의 애

김욱진

 

나에겐 늘 애 하나가 착, 달라붙어 있다
그 애가 누구 애인지 모르지만
애물단지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영화관 앞 지나가면 영화보자 그러고
고기 굽는 냄새 풍기면 고기 사먹자 그러고
예쁜 여자 지나가면 저 여자 훔쳐보자 그러고
가끔 성가실 때도 있지만 애처롭다는 생각 들어
그 애가 웃으면 같이 따라 웃고
찡그리면 나도 같이 찡그린다
어딜 가다 밥 먹자 그러면 밥 먹고
잠자자 그러면 잠자고
똥마렵다 그러면 애써 똥 누고
그러지 않으면, 금세 화 버럭 내는 그 애

왜 이러지, 나를 온종일 부려먹고도

밤이면 젖먹이처럼 칭얼거리고 보채고

버르장머리 확 뜯어고쳐줘야겠다 싶어

그놈의 애 저만치 뚝 떼놓고
애간장 끓이듯 녹차 한 사발 끓여

나 한 잔 그 애 한 잔
여기, 지금, 누가 차를 마시고 있냐고
애먹은 놈이 애먹인 놈한테 물었다
어느새 그 애는 찻잎처럼 가라앉고
나 혼자 그 애를 우려먹고 있었다

그 애가 수상하다, 수상하다 싶었는데
나는 한평생 그 애 뒤치다꺼리하며 살고 있었다
나를 길들이려고 이생까지 따라온 그놈의 애

 

(2024 시산맥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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