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김욱진 2024. 11. 7. 12:09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김욱진

 

 

삼식이가 되어버린 요즘 밥값 한답시고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우르르 한꺼번에 다 몰려온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숟가락 젓가락

서로 뒤엉켜 아우성치다

틈새로 물이 스며들면

저거들끼리 물살을 밀고 당기면서

달그락달그락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손 

가락이 물레 잣는 노랫가락처럼 휘어

고개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

숟가락 젓가락에 먼저 가닿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평생 설거지하고 살아온 집사람

잔소리 한 바가지

싱크대로 확 쏟아 붓는다

대접받는 그릇이 먼저지 

밥하고 국 없는 밥상이 어디 있냐고

금세 나는, 어물쩍 

이 접시 저 접시 눈치 보며

잔소리까지 몽땅 받아먹은

밥그릇 국그릇 설거지하고, 맨 나중에

속 새카맣게 탄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2023 도동문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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