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김욱진
삼식이가 되어버린 요즘 밥값 한답시고
가끔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우르르 한꺼번에 다 몰려온
밥그릇 국그릇 반찬접시 숟가락 젓가락
서로 뒤엉켜 아우성치다
틈새로 물이 스며들면
저거들끼리 물살을 밀고 당기면서
달그락달그락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손
가락이 물레 잣는 노랫가락처럼 휘어
고개 삐죽 내밀고 쳐다보는
숟가락 젓가락에 먼저 가닿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평생 설거지하고 살아온 집사람
잔소리 한 바가지
싱크대로 확 쏟아 붓는다
대접받는 그릇이 먼저지
밥하고 국 없는 밥상이 어디 있냐고
금세 나는, 어물쩍
이 접시 저 접시 눈치 보며
잔소리까지 몽땅 받아먹은
밥그릇 국그릇 설거지하고, 맨 나중에
속 새카맣게 탄 나를 설거지할 때 있다
(2023 도동문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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