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산낙지와 하룻밤 / 김욱진

김욱진 2024. 10. 22. 15:34

산낙지와 하룻밤 

김욱진

 

나 어릴 적

우등상 받아왔다고

아버지는 시오리 길 장에 가서

장작 한 짐 판 돈으로

산낙지 한 마리

지겟머리 걸머지고 오셨다

그날 저녁

그 녀석을 산 채로 듬성듬성 썰어

접시 위에다 올려놓으니

낙지 수십 마리가 꼬물꼬물거렸다

난생처음 바다를 떠나온 낙지는

참, 어리둥절했겠다

바다에 사는 줄도 모르고 산

낙지는 정신없이 참, 기름장을 찍어 먹었다

미끌미끌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멀미를 했다

낙지는 내 입안이 갯벌인 줄 알고

천장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

목구멍 속으로 차츰차츰 기어들어 갔다

낯선 숙소에서

밤새 구불텅구불텅 온몸을 뒤척이다

새벽녘 나랑 곤히 잠들었다

 
(2024 텃밭시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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