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낙지와 하룻밤
김욱진
나 어릴 적
우등상 받아왔다고
아버지는 시오리 길 장에 가서
장작 한 짐 판 돈으로
산낙지 한 마리
지겟머리 걸머지고 오셨다
그날 저녁
그 녀석을 산 채로 듬성듬성 썰어
접시 위에다 올려놓으니
낙지 수십 마리가 꼬물꼬물거렸다
난생처음 바다를 떠나온 낙지는
참, 어리둥절했겠다
바다에 사는 줄도 모르고 산
낙지는 정신없이 참, 기름장을 찍어 먹었다
미끌미끌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멀미를 했다
낙지는 내 입안이 갯벌인 줄 알고
천장에 착 달라붙어 있다가
목구멍 속으로 차츰차츰 기어들어 갔다
낯선 숙소에서
밤새 구불텅구불텅 온몸을 뒤척이다
새벽녘 나랑 곤히 잠들었다
(2024 텃밭시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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