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운주사 와불 / 김욱진

김욱진 2024. 10. 22. 15:25

운주사 와불

김욱진

 

천불 천탑 불사 중 쓰러져 누워계신다고, 천년을

물어물어 천불산 운주사 찾아갔다

무슨 꾀병 부리실 리는 만무하고

얼마나 속 천불이 나셨을까

산새들 간간이 날아와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있었다

어떤 새는 천수경 외듯 중얼중얼

어느 새는 부처 입에다 공양 올리듯

물똥 찔끔 싸고 어느새 훨훨

와불이시여, 이 불사 어느 천년에 다 하시려고

이렇게 누워만 계십니까

허허, 참

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자네가 누워 있다니

오늘은 누워 있는 그 자리서 천불 천탑 불사해야겠네

조금 전 자네 입에서 뱉은 천년이 내 귀퉁이로

천둥번개처럼 지나갔지

너와 나 둘 아닌 그 자리

누구의 천년이 머물다 갔는가

와, 불이다

한 소식 전해들은 사람들 허겁지겁 찾아와

어떤 이는 텅 빈 손바닥에 천불이란 천불 다 내려놓고

또 어떤 이는 머리맡에 돌멩이 하나 얹고

그곳이 바로 천불 천탑 불사한 자리일세

아뿔싸, 내가 천기를 누설하고 있구먼

죽음 불사하고 사는 돌사람 얘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저, 저잣거리로 나선 석불들 몸짓거리 한번 보게나

빙시레 웃고 앉아 있는 석불은 접때의 나고

모가지 달아난 석불은 그끄제께의 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석불은 어저께의 나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석불은 시방의 나고

양팔 양다리 없는 석불은 글피의 나고

이목구비 다 뭉개진 석불은 그글피의 나일세

저기 저, 나 아닌 나 또 어디 있는가

 

(2024 도동문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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