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
김욱진
천불 천탑 불사 중 쓰러져 누워계신다고, 천년을
물어물어 천불산 운주사 찾아갔다
무슨 꾀병 부리실 리는 만무하고
얼마나 속 천불이 나셨을까
산새들 간간이 날아와 팔다리 주물러드리고 있었다
어떤 새는 천수경 외듯 중얼중얼
어느 새는 부처 입에다 공양 올리듯
물똥 찔끔 싸고 어느새 훨훨
와불이시여, 이 불사 어느 천년에 다 하시려고
이렇게 누워만 계십니까
허허, 참
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자네가 누워 있다니
오늘은 누워 있는 그 자리서 천불 천탑 불사해야겠네
조금 전 자네 입에서 뱉은 천년이 내 귀퉁이로
천둥번개처럼 지나갔지
너와 나 둘 아닌 그 자리
누구의 천년이 머물다 갔는가
와, 불이다
한 소식 전해들은 사람들 허겁지겁 찾아와
어떤 이는 텅 빈 손바닥에 천불이란 천불 다 내려놓고
또 어떤 이는 머리맡에 돌멩이 하나 얹고
그곳이 바로 천불 천탑 불사한 자리일세
아뿔싸, 내가 천기를 누설하고 있구먼
죽음 불사하고 사는 돌사람 얘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게
저, 저잣거리로 나선 석불들 몸짓거리 한번 보게나
빙시레 웃고 앉아 있는 석불은 접때의 나고
모가지 달아난 석불은 그끄제께의 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석불은 어저께의 나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석불은 시방의 나고
양팔 양다리 없는 석불은 글피의 나고
이목구비 다 뭉개진 석불은 그글피의 나일세
저기 저, 나 아닌 나 또 어디 있는가
(2024 도동문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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