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시화전
김욱진
얼마 전, 엄니 살던 흙집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틈틈이 주워 모은 기왓장에다 연꽃 그림 그리고 시 몇 구절 적어 마당 구석구석 세워뒀다 이게, 시처럼 그림처럼 보였던지 오가는 개미들은 줄지어 서서 한참 쳐다보다 가고 동네 길고양이들은 재능 기부하듯 야옹야옹 자작시 낭송도 하고, 그 소문 듣고 찾아온 벌 나비는 시향에 흠뻑 젖어 훨훨 춤도 추고 시화가 뭔 줄도 모르는 거미들은 처마 밑 허공에다 습작하듯 그림 같은 시 줄줄 걸쳐놓고 이 줄 저 줄 밑줄 그어가며 붓질하느라 분주하고 어디선가 귀티 나는 새도 한 마리 날아와 훗훗, 하며 시를 읊었다
비슬산 문필봉이 나를 내려다보며
그냥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쓴 것
그게 다 그림이고 시라는 말씀 한마디
후투티처럼 훅, 던지고 갔다
(2024 물빛 4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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