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브레이크 타임

김욱진 2024. 11. 7. 12:12

브레이크 타임

김욱진

 

 

시래기 국밥집 앞 지나가다

문득 시래깃국 먹던 어린 시절 떠올라

고 생각 고대로 데리고

식당 문고리 잡아당겼더니 문이 잠겼다

브레이크 타임, 3시부터 5시까지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두 시간이면 무밭 다 갈아엎고도 남는 시간인데

그래, 올가을 무도 똥값이고

시래깃국 장사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

그래도 밥때 놓친 사람들 허기 채우긴 그저 그만인데

설마, 시래기가 쓰레기 되어버린 걸까

손님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 길바닥 버려진 무청 한 이파리 주워

너의 전생은 무, 내생은 시래기

그놈의 한 생 물고 늘어진 나는

무 한 입 베어 물고

시래기 되었다 무 되었다

한 시간 남짓 온갖 궁상떨면서

기다렸다, 나도 무도 아닌 나무 의자에 앉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

무의 자를 만나고 있었다

시래기는 오간 데 없고

무 사이로 또 한 생이 지나갔다

폐휴지 한 리어카 싣고

국밥값 4000원 슬몃 훔쳐보는 노부부

브레이크 밟았다 뗐다 그러면서

줄을 섰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들처럼

 

(2023 텃밭시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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