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타임
김욱진
시래기 국밥집 앞 지나가다
문득 시래깃국 먹던 어린 시절 떠올라
고 생각 고대로 데리고
식당 문고리 잡아당겼더니 문이 잠겼다
브레이크 타임, 3시부터 5시까지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두 시간이면 무밭 다 갈아엎고도 남는 시간인데
그래, 올가을 무도 똥값이고
시래깃국 장사해서 먹고 살기 힘든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
그래도 밥때 놓친 사람들 허기 채우긴 그저 그만인데
설마, 시래기가 쓰레기 되어버린 걸까
손님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 길바닥 버려진 무청 한 이파리 주워
너의 전생은 무, 내생은 시래기
그놈의 한 생 물고 늘어진 나는
무 한 입 베어 물고
시래기 되었다 무 되었다
한 시간 남짓 온갖 궁상떨면서
기다렸다, 나도 무도 아닌 나무 의자에 앉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
무의 자를 만나고 있었다
시래기는 오간 데 없고
무 사이로 또 한 생이 지나갔다
폐휴지 한 리어카 싣고
국밥값 4000원 슬몃 훔쳐보는 노부부
브레이크 밟았다 뗐다 그러면서
줄을 섰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들처럼
(2023 텃밭시학 연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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