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최영철
쌀뜨물 같은 이것
목마른 속을 뻥 뚫어 놓고 가는 이것
한두 잔에도 배가 든든한 이것
가슴이 더워져 오는 이것
신 김치 한 조각 노가리 한 쪽
손가락만 빨아도 탓하지 않는 이것
허옇다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지다가
벌컥벌컥 샘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이것
한 잔은 얼음 같고 세 잔은 불같고
다섯 잔 일곱 잔은 강 같고
열두어 잔은 바다 같아
둥실 떠내려가며 기분만 좋은 이것
어머니 가슴팍에 파묻혀 빨던
첫 젖맛 같은 이것
시원하고 텁텁하고 왁자한 이것
어둑한 밤의 노래가 아니라
환한 햇볕 아래 흥이 오르는 이것
반은 양식이고 반은 술이고
반은 회상이고 반은 용기백배이다가
날 저물어 흥얼흥얼 흙으로 스며드는
순하디 순한 이것
- 월간 <현대시> 200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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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막걸리에 대한 개념과 예찬은 총정리된 것으로 봐도 좋겠다. 그런데 요즘 다시 뜨고 있는 막걸리는 여기에다 몇 가지를 더 보태야할 것 같다. 지금의 막걸리는 그저 ‘막 걸러낸 술’도 아니고, 6~70년대 먹었다 하면 다음날 골 때리는 속칭 카바이트 막걸리도 아니다. 농촌에서 농부들이 일하다 마신다 해서 붙은 ‘농주’란 이름도 사라졌고, ‘서민의 술’이라는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우리 쌀로 빚은 우리의 전통술이란 사실 하나는 분명하지만 최근 정부의 쌀 소비 촉진책과 맞물려 불붙은 막걸리 소비추세와 방향은 예사롭지 않다. 그 가운데 살균처리를 하지 않고 천연효소를 사용한 ‘생 막걸리’는 짧은 유통기간에도 불구하고 그 맛과 향이 살아있어 특히 젊은이들과 여성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막걸리 한 병의 요구르트 100병과 맞먹는 엄청난(?) 유산균 함량과 풍부한 식이섬유 등으로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좋다는 마케팅 전략이 주효하여 이웃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서부터 그 중흥의 바람이 불어왔다. 게다가 ‘배용준’효과까지 더해져 막걸리는 이제 김치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음식한류’로 우뚝 섰다.
최근 다양한 소비 계층을 겨냥해 출시된 막걸리의 맛을 보니 텁텁하고 시큼한 맛은 한층 부드럽고 가벼워졌으며 숙취의 염려도 없을 것 같았다. 막걸리 시인 천상병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했는데, ’첫 젖맛 같은 이것‘이 어쩌면 정말 ’은총‘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옛날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오너라’는 엄명에 닷 되 주전자 들고 술심부름 나서 돌아오는 길 주전자가 무거워서 한잔, 궁금해서 한잔, 목이 말라 또 한잔 꼭지를 빨며 어질어질했던 기억의 막걸리가 이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 은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흠신 빠져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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