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은해사 들머리에 들다

김욱진 2025. 10. 20. 09:38

은해사 들머리에 들다
 

어디서든 들머리에 들다보면

눈치 채는 게 태반이다

이곳도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모양이다
애솔은 아예 없고 노송들만 빼곡

계곡물은 낮은 음계로, 새들은 높은 음계로  

지팡이 여럿 짚은 솔은 지팡이로 

허리 구부정한 솔은 어깨 겻하고 

팔다리 부러진 솔은 엉거주춤 절름발이 춤도 추고 

 

숨결이 드세다
도레미파라는 허파로 숨 길게 들이쉬고

내쉬는 솔, 라시도는 

어느새 힘겨워 기진맥진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센 기가 흐르는 곳이라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무작정 허리춤 꽉 껴안고 빙빙 돌면서
구불텅구불텅 드러낸 뿌리마저 다 짓밟는다

 

그래서일까, 노송마다
치매노인처럼 번호표 하나씩 죽 매달아놓았고
언뜻 보면 죄수번호 같고 수목장 같기도 한데
귀대고 가만 엿듣다 보면

은해사 천왕문 솔숲

로고송처럼 지나가는 노송의 해맑은 노랫소리

여기가 바로 눈 밝은 자들의 성지다

 

(2025 대구문협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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