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김욱진 시인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작 14편

김욱진 2025. 10. 3. 13:22

(미발표작 7편)

나를 일깨워준 이 

 

이 세상 엮여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씹을 일도 참 많은데

씹는다는 걸 좀만 더 곱씹어 보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갉는다는 것

 

건넛집 술주정뱅이 아재 싸움 말리다

스무 살배기 대문니 하나 애꿎게

한여름 밤 날아든 주먹에 맞아죽었다

그날 밤새도록 나는 아재를 씹다가

그도 모자라 아재 주먹 질근질근 씹다가

새벽녘에는 입소문 듣고 줄줄이 달려온 이마저 바작바작 갈았다

그러자 어떤 이는 죽자고 울었고, 또 어떤 이는 히죽히죽 웃었다

 

입술 꽉 깨물고 서있는 옆집 대문니

대문을 제아무리 걸어 잠거도 씹은 말은 술술 새나갔다

한솥밥 먹고 살다 헤어진 이들의 경계가 뚜렷해졌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나를 안주처럼 씹어댔고

쉬이 씹어 넘기기엔 버겁다고 여긴 아재뻘 되는 이들은

이 보다 한술 더 떠 술을 연신 원망하며 씹어댔다 

이 사이 잇몸은 대문짝처럼 두툼해졌다

 

말 물어 나르는 거조차 어눌하기 짝이 없는 대문니 눈치 보며

옆에서 일평생, 아니 이 평생 지켜본 이들은

그간 내가 야무지고 질긴 것들을 씹을 때마다

무지 아슬아슬했다고 날을 세웠다 

환갑 줄에 아래쪽 앞니 세 대가 한꺼번에 훌쩍 빠졌고

윗니 아랫니 세대 차마저 훅 사라져버린 이 마당

이는 무얼, 누군가를 씹기만 하고 살아온 나를

무던히도 일깨워주고 갔다     

 

얼이와 빵이

 

인천 차이나타운 공갈빵집 아르바이트하던 동갑내기

얼이와 빵이가 빵집을 개업했습니다

을이 갑이 된 기분으로

얼이는 빵이에게 얼을 심어주고

빵이는 얼이한테 빵을 먹여주겠다는

위대한 슬로건을 내걸고

얼빵이네 빵집이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은 간을 보았습니다

성을 따 붙인 저 간판 이름 속에

무슨 꿍꿍이속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간까지 다 빼주는 얼간이와

속 텅 비우고 장사하는 얼빵이는 아닐 거라고 

얼간이와 얼빵이, 성이 같은 게이일지도 모르지?  

 

눈치도 없이

얼이는 빵이가 얼빵이라고 

빵이는 얼이가 얼간이라고

서로 놀려대면서

얼이는 빵이 간干을 보고

빵이는 얼이 간肝을 보며

간보았다 그랬습니다

 

간干과 간肝사이

달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얼빵이네 빵집으로 몰려와

간을 간으로 간보는 얼간이만 찾으며

얼간이 빵만 사갔습니다

(얼간 빵이 아닙니다, 유사품에 속지 마세요)

얼간이네 빵집 주인으로 소문이 난 얼빵이 부부

토종인지 중국게이인지 아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얼이와 빵이는 찰떡궁합입니다

 

그 바람에

 

은행들이 다 털렸다

졸지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버린 은행들은 

길바닥에 나앉았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구린내가 났다

누구 소행인지 따져볼 겨를도 없이

줄도산 당한 은행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바람에

은행 주가는 폭락했고

빚쟁이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짓뭉개듯

은행 짓밟고 지나갔고

바람은 그냥 빚잔치 한 판

속 시원하게 벌인 듯 지나갔다

그 바람에

빚진 늦가을 바람은

큰길가 신호등 언저리 보도블록 위

은행 신용불량자 딱지처럼 딱 붙어있는

일수대출 광고지 직빵 전화번호부터

슬그머니 떼내고 있었다  

 

수상한 시국

 

거시기 말대로 나는 거시적으로 받아 적었다

마누라는 그 시를 미시적으로 읽었다

애면글면 쌀뜨물로 끓인 된장찌개 속에서  

좁쌀만 한 바구미 한 마리 동동 뜨는 걸 보고

나는 미시적으로 밥맛이 뚝 떨어졌다

눈치 가로챈 마누라는 시치미 뚝 떼고

애먼 쌀눈 기죽이지 말라며 거시적으로 읽었다

 

그 질로 눈먼 나의 시는 시시비비에 휩싸였다

밥 때만 되면 그 흔해 빠진 상 하나 받지 못하냐고

구시렁거리는 마누라 말투가 수상쩍기 시작했다

죽은 시 끙끙 움켜쥐고 오락가락하다 들키는 바람에   

이젠 원고 청탁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시는 나를 세상 밖으로 내던졌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굶어 죽어도 시의 눈을 뜨고 죽어라

나는 아직 이토록 간절한 원고 청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누라는 늘 거시기 앞에서 죽는 시늉을 했고

거시적인 것만이 시가 아니라고 발설하는 순간

거시기는 죽었다

미시적인 것이 곧 거시적인 것이라는 시풍에  

거시기와 마누라 내통 사실이 다 드러났고 

 

시쳇말로 시국은 어수선해졌다

마누라는 시고 나발이고, 어이 거시기 

골방에 쌓인 먼지나 제대로 닦으라며

시도 때도 없이 씨불이고  

밥그릇 설거지 시봉만 잘하고 살아도

시가 절로 쏟아지겠다며 시 부리고 

 

정신이 버쩍 든다, 시 부린다는 말에

나는 여태 시는 고사하고 반찬투정만 부렸으니

이렇게 펄펄 살아 있는 시어가 내 밥상머리 올라오는 줄도 모르고

  

    

감천 벽화마을

 

산만데이 그림 한 폭 걸렸습니다

아직도 피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마을 입구 작은 박물관 들어서니

닥지닥지 붙은 판자촌 앞에서

이산가족 찾는 눈빛들로 뒤엉켰습니다

밀물에 밀려와 그냥 무질고 살다

물때 놓쳐버린 달동네 오롯 걸렸습니다 

빛과 어둠 어우러져 빚은 달

그림자도 오붓이 걸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 고대로 붓질했습니다

벽이란 벽은 온통 그림으로 허물었습니다 

지붕은 알록달록 화장을 했습니다

천지개벽입니다

눈 깜빡할 사이

미로 속으로 빠져들어 길 잃었습니다 

앞집은 뒷집에 햇빛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붕 나직이 이고 선 집들 올망졸망 걸어가는 골목

담벼락 타고 거슬러 오르는 어린 물고기들은

어미 되어 바다로 헤엄쳐 갔습니다 

으슥한 대중목욕탕에 들앉아 묵은 때를 벗기며 

얼룩진 나를 디자인했습니다

안팎이 간만에 개운했습니다

부랴, 감내어울터 빨간 우체통에 

감감무소식 한 통 부치고 돌아왔습니다

 

 

꿀밤을 맞았다

   

소슬바람 부는 참나무 아래서 

꿀밤을 줍다

꿀밤을 맞았다

 

우연히 다람쥐와 눈 딱 마주쳤다

놀란 듯

반가운 듯

 

나는 다람쥐 몰래

꿀밤을 연신 호주머니에 주워 넣었고

다람쥐는 나 몰래 

호비작호비작 그걸 땅속에 파묻었다

 

그 이듬해 봄

무심코 참나무 아래 가봤더니

야린 참나무 새순들이  

키 재기하며

쏙쏙 올라오고 있지 뭔가  

 

다람쥐는, 참

나무 주인 노릇 톡톡

 

나는, 헐 

이순에 꿀밤 맞을 짓만 잘잘

 

    

카톡방

   

말모이 콕콕 쪼아먹는 소리

카톡, 카톡

 

허기진 말들

주인 없는 말들

머리꼬리 다 잘린 말들

 

온 천지

말풍선처럼 떠돌다 

 

내 방으로 와

칼춤을 춘다

 

한참에

말무덤이 된다

 

 

(발표작 7편)

 

편을 갈라 화투를 치다 보면

패가 잘 풀리는 사람과 한 편이 되는 날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그저 푹 무질고 앉아 싸 붙이고는 엉덩이만 들썩여도

돈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

 

패라는 게 그렇다

꽃놀이패에 걸려

패싸움을 하다가도

팻감이 없으면

한 방에 폐가망신 해버리기도 하고

 

패거리도 그렇다

얼씬 보기엔 반상 최대의 패처럼 보여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 패거리 저 패거리 기웃거려 보는 거다

별 밑천 없이 들락날락하기도 편하고

급할 시는 그 패를 마패처럼 내밀어

은근슬쩍 방패막이로 써먹기도 하고

 

팻감이 궁할 땐

이 패에서 저 패로

저 패에서 이 패로

철새처럼 줄줄이 옮겨 다니면서

늘상 화기애애한 척

돌돌 뭉쳐 돌아다니며 놀고먹기엔 딱 그저 그만이다

패가 폐가 되는 줄도 모르고 

패거리가 붐비는 세상  

 

그 패 한구석엔

눈치와 아부와 부패가 암암리 도사리고 있어

나는 일찌감치 문패조차 내걸지 않을 요량이다

 

 

두레반

 

모처럼,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손수 장만한 칼국수

온 가족이 두레반에 둘러앉아 후루룩 소리 내어 먹는다

주물럭주물럭 반죽한 밀가루 안반 위에다 올려놓고

풍진 세상 모퉁이 돌고 돌아 

홍두깨로 모난 녀석 볼 한 번 더 비벼주며

키 몸무게 자로 재듯 빚은 손칼국수

어머니 손맛이 절로 느껴지는 저녁이다

바른손 새끼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올 상 싶으면

약지 중지 손구락은 원을 그리며 다독이고

왼손 엄지 중지에 지그시 힘 실어주는 어머니의 손끝은

섬섬옥수다 

둥근 세상 일궈가는 어머니 손놀림 어깨 너머로 훔쳐보며  

우리 칠남매는 저마다 한 가락씩 하는 손가락을 내밀고

겻불에 국수 꼬랑지 구워 나눠먹는 법 익혔다

그러는 사이, 바람에 밀리고 밀린 안반은 헛간으로 밀려나버렸고

한평생 국수만 밀어댄 홍두깨는 부지깽이처럼 가늘어졌다

밀고 당기는 게 뭔지도 잘 모르는 국수 꼬랑지 녀석들은

제 앞길 틔운다며 이곳저곳 떠밀려 다니기 일쑤

세상은 어느새 우리 가족을

두레반 밖으로 제각기 밀어내고 있는 이 마당

한복판에다 나는 어릴 적 둘둘 말아뒀던 멍석을 깔고

마누라는 어머니 대를 이어 국수를 밀고

아이들은 마당 가 피워둔 모깃불 옆에서

앵앵대는 모기처럼 눈물 훔치며 국수 꼬랑지 구워먹고 

저 하늘 별들은 손칼국수 국물에 반짝반짝 빛나는 양념 듬뿍 뿌리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한여름 밤, 저녁은 별미겠다  

 

 

무료급식소

 

수성못 둑을 돌다 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급식소 

새우깡 몇 물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 건달 행세하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

꼬리 깡 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식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 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은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실컷 하고 허기진 듯

물위로 힐끔 고개 내밀다    

찰칵, 착각

밥 때인 줄 알고 

소복 모여드는 수성못 둑 가 

 

    

씨/시, 앗!

 

섣달그믐밤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골방에 누워 감 홍시 하나 물컹 삼켰더니

고놈의 씨가 목구멍에 걸려

넘기지도 토하지도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다 시가 되어버렸다

것도 모르고 날로 꼴깍 삼킨 시

명치에 딱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고놈의 시를 살려봐야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새벽녘 안도현 씨가 씨익 웃으며 찾아와

감이 익으면

삼킬 것도 토할 것도 없이

다 시가 된다고 그러지 뭔가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죽은 시를 살리는 것도 감

날로 삼킨 시를 푹 삭히는 것도 감

뭣이 죽은 듯 살아있는 감이라고

설날 아침

제상 맨 앞줄 터줏대감처럼 앉아 절 받는 감

씨가 그랬다

너의 고조모는 성주 이씨, 증조모는 장수 황씨, 조모는 인천 채씨

씨가 뭔 줄도 모르고 시집와서 그냥 씨 뿌리고 산 것도 감이라고 

지방문에 걸렸다, 그게 다 시가 되어 

불씨처럼 화끈 달아오르면

감은 요리조리 데치고 볶고 삶고

그걸,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그러지 뭔가

앗! 

 

 

,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집 한 권 냈다고

팔십 평생 땅뙈기 일구고 산 오촌 당숙께 보내드렸더니

달포 만에 답이 왔다  

까막눈한테 뭘 이래 마이 지어 보냈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우린

시래기 국만 끓여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허기야,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

아무 맛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 봐도 그렇고

입맛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먹으면 좋것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 

이전에 장날마다 약장수 영감 따라 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고

한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

시방도 어데서 옷고름 풀듯 말듯 애간장 태우며

산삼뿌리 쏙 빼닮은 만병통치약 팔고 있나 모르것다

그나저나 니 지어 논 시 

닭 모이 주듯 시답잖게 술술 읽어보이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

고운 치매 들었다 하이

내 맴이 요로코롬 시리고 아프노

시도 때도 없이 자식 농사가 질이라고 했는데

풍년 드는 해 보자고 그랬는데

 

 

못 다한 말

-골방에서

 

 

자장면 한 그릇 천 원 할 때

세 그릇 값으로 시집 한 권 샀던 그 시절

나는 쫄쫄 굶긴 배 띄워놓고 배부른 척하다

신세타령만 하는 비렁뱅이

시인이 되고 말았다

책장에 꽂힌 해묵은 시 몇 편 거들먹거리며

유명시인 헐값에 다 팔아먹고

이젠 골방으로 밀려난 시의 집들마저

경매로 넘겨야 할 판이니

내게로 와 굶어 죽은 시혼들이여

지렁이처럼 구불텅구불텅 기어가다

걸려 넘어지고 잘리고 짓밟힌 숱한 문장들이여  

그대 못 다한 말, 못 다한 저녁의 풍금소리

언제쯤 울려 퍼질 것인가

골방에 골백번 더 처넣었다 건져낸 말

아, 누가 숨은 상상과 행간의 말들을 읽고 갈까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채 안 되는 나의 집 나의 시집

골방에서 말을 잃은 이 밤 

 

 

참, 조용한 혁명

 

거짓과 혼돈이 난무하는 세상, 참

꽃으로 뿌리내린 비슬산 

 

사월의 민심은 

아래서부터 위로

 

붉게 붉게 번져

천심을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참, 조용한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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