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 설 사이
김욱진
까치설날 아침, 골목을 도니
사람들 굴비처럼 수십 미터 엮여있다
홍게 열 마리 삼만 원
고향 대신 붉은 등판 흘긋거리며
대게 대신 홍게를 집어 든다
대목엔 늘 바가지라지만
설인데, 설마
설마가 슬쩍 줄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비닐장갑 낀 손들
게 다리를 들춰보고 배를 눌러보고
살아있는 값을 깎는다
"설 대목인데, 이 정도면 그저 아이껴"
껴껴, 게 장수 입에서 튀어나온 아이
목소리가 구불텅구불텅 골목을 후벼 판다
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길목
폐지 가득 실은 리어카 하나
설을 비켜 천천히 지나간다
꼬부랑 할머니
이 게 저 게 눈으로 헤아리다
찌는 냄새만 깊숙이 들이마신다
누군가는 살을,
누군가는 설을 고른다
살과 설 사이
어정거리는 허기
먼저 낚아채 가는 쪽이 있다
비닐봉지 속 홍게는 묵직하고
리어카 바퀴는 가볍게 덜컹인다
올 설은
상 위에서 붉게 오르고
길목에서는 김처럼 흩어진다
(2026 시인부락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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