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의 예의 / 고 은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
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닌 속수무책으로 실시간의 화면을 본다
몇 천일지
몇 만일지 모를 일상의 착한 목숨들
이제 살아오지 못한다
어머니도
아기도
할아버지도 휩쓸려갔다
아버지도
누나도 친구들도 어느 시궁창 더미에 파묻혔다
그리도 알뜰한 당신들의 집
다 떠내려갔다
배들이 뭍으로 와 뒤집혔고
차들이 장난감으로 떠내려갔다 우유도 물도 없다
인간의 안락이란 얼마나 불운인가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무명인가
인간의 장소란 얼마나 허망한가
저 탕산 저 인도네시아
저 아이티
저 뉴질랜드
오늘 다시 일본의 사변에서
인류는 인류의 불행으로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나 일본은 새삼 아름답다
결코 이 불행의 극한에 침몰하지 않고
범죄도
사재기도
혼란도 없이
너를 나로
나를 너로 하여
이 극한을 견디어내고 기어이 이겨낸다
오늘의 일본은
다시 내일의 일본이다
내 이웃 일본의 고통이여 고통 그 다음이여
오늘의 일본으로
이후의 일본 반드시 세워지이다
—〈한겨레〉2011. 3. 15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하상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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