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스크랩] 거울 /이성선

김욱진 2011. 12. 1. 21:16

거울 /이성선

 

내겐 이제 거울이 필요 없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고

부지런히 들여다보던

거울은 필요 없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바닷가에 나가 높은 물결을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냇물 흐르는 시골길을 걷다가

들꽃에 얼굴을 묻으면

그것이 나의 거울이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이보다 더

매일 아이들 얼굴 속에

나의 얼굴을 묻으면

그 눈빛들이 진정한 나의 거울이 되었다

 

-『이성선 전집』(서정시학, 2011)

 

세상엔 ‘거울’을 소재로 쓴 수많은 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적 향기가 빛나는 이 시만큼 거울의 의미를 깊고 아름답게 잘 노래한 시를 보지 못했다. 여기의 거울은 유리된 된 거울이 아니라, 천지만물이라는 자연의 거울이다. 우주 만물 속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영혼, 깨달음을 찾는 영혼의 시인 이성선은 바로 이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자기 인식은 순간순간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알아차릴 때 생겨난다. 실제의 우리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바로 관계이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관계’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람들 간의 관계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인간은 천지만물(우주)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천지만물과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는가. 그들은 나에게 무엇이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정녕 그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까?

 

존재는 반드시 하나의 시간과 공간의 좌표 속에 놓인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은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오직 어떤 관계의 그물망 속에만 존재한다. 그 관계의 장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비추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장자의 거울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늘 자신의 마음만큼만 세상을 본다.

오직 스스로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만큼 커질 때,

그때서야 세상과 만물의 마음을 온전히 볼 수 있다.

결국 나의 모든 마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졸고, <小文情話>중에서

 

거울 속의 사람이 웃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등학생도 알다시피 거울 앞에 선 사람이 먼저 웃어야 한다. 타인이라는 거울, 세상이라는 거울, 천지만물이라는 거울도 다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곧 내 마음이 비춰지는 대상이니까. 내 마음을 비춰주는 세계라는 거울에서 미소와 웃음을 보고 싶으면, 내 마음이 먼저 미소와 웃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하늘이 나의 거울이 되고, 바닷가의 높은 물결이 나의 거울이 되고, 냇물 흐르는 시골길에 핀 들꽃이 나의 거울이 되고, 아이들 얼굴 속에 맑은 눈빛이 나의 거울이 되는 것은 이 모든 것에 자신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은유의 파노라마가 아니라 한 영혼의 지순한 바람 속에서 나온 필연적인 삶의 기쁨이자, 또렷하고 생생한 체험의 소회인 것이다.

 

우리는 이와 함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거울은 내가 비춰볼 때만 나를 보여준다는 것. 아무리 좋은 거울도 내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를 비춰주지 못한다. 비단 유리의 거울만 그런 것이 아닐 터이니, 하늘과 꽃과 별과 바람과 같은 자연의 모든 거울 또한 늘 그러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사랑이라는 거울에 자신들을 비춰보는 연인들과, 학문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학자와, 사업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이들과, 예술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이와, 종교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이들과, 가난과 부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이들 또한 모두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삶에 속에서 어떤 거울을 가져야 할까? 어떤 거울이 정말 나를 잘 비춰주는 거울일까? 내 마음이 비춰지는 것은 모두 나의 거울일지니, 우리는 어쩌면 끝없는 거울과 거울 속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거울을 노래한 한편의 ‘시’라는 거울에 비친 그의 맑은 영혼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 또한 어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할지 진진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주수

출처 : 달성문인협회
글쓴이 : 문소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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