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
정극인
갓 괴어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술잔 세어 가며 먹으리라.
화창한 봄바람 문득 불어 푸른 물 건너오니,
맑은 향기 잔에 떨어지고, 붉은 꽃잎 옷에 떨어진다.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술집에 술이 있는지 물어,
어른은 지팡이 짚고, 아이는 술동이 메고,
시를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
고운 모래 맑은 물에 잔 씻어 부어 들고,
맑은 물을 굽어보니, 떠오는 것이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들이 그곳인가.
소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에 두견화 부여잡고,
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촌락이 곳곳에 벌여 있네.
안개와 노을,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에 봄빛도 흘러넘치는구나.
공명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가.
소박한 시골 생활에도 헛된 생각 아니하네.
아무튼 평생 누리는 즐거움이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