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타자의 시간/신용목

김욱진 2013. 5. 9. 18:27

                        타자의 시간

                             신용목



그곳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
그리고 봄에 대한 의심

그곳에 별이 빛난다는 소식
그리고 밤에 대한 의심

당신의 소식은 늘 당신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앞서 있는 나의 의심처럼
나는 당신 소식을 봄밤에 들었다

그곳에서 귀는 뜨거울 때마다 붉어지는 장미의 한 잎이라
깨물면 저녁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지

나는 호수로 가 당신의 귀를 만진다 당신의 입술을 잘라 붙인 물수제비를
소식들의 수평이 구멍을 열면

장미는 빛깔로만 피었다 지지
마침내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

꽃들의 형장에서 소식은 온다 당신의 귀와 당신의 입 사이에서 꽃들이 목을 잃고 쓰러질 때 꽃잎처럼 호수는 폭발하고 꽃잎처럼 입을 열고 귀를 열고 꽃잎처럼 온몸 구멍을 모두 열면 다시 온몸의 구멍마다 꽃잎처럼 의심이 피어나는 봄밤의 축제로부터

나는 밖을 잠글 수 없어 안을 잠그고 잔다
모든 생활은 드디어 반복되고

모든 사랑은 드디어 중첩된다



-문학과지성사.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