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이라는 수
서하
어떤 선배 시인이 아홉 번 째 시집을 보내주었다
날 확 땡긴 아홉이라는 수, 내 옛 서랍 속에도
흉가 같은 아홉수가 여럿 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면소재지 마을 점방에서
아버지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동양화 전공’으로 피어나던 끝자리 아홉 수,
가보(かぶ)를 가보(家寶)인 듯 쪼아 붙인 시뻘건 눈빛!
그 눈빛, 집에만 오면 죽어버리는 화분 같았다
아홉 살 햇무 같은 종아리에 챙챙 감기던 별빛회초리,
-그건 안 돼, 하지마, 하지마!
열아홉 살, 버벅! 뜻밖의 사고로 참 깊이 아팠던, 지금도 아련한 첫사랑,
스물아홉 살, 보따리 싸 친정 가던 날밤, 시골버스 앞을 가로막던 폭설,
서른여덟 살보다 아둔했던 서른아홉 살도 절뚝절뚝 다녀갔다
내게 아홉이라는 수는
밤길 서성이다 아까시나무에 머리채 잡힌
아린 달빛이었다
출처 : 대구시인협회
글쓴이 : 겨울판화(박윤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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