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스크랩] 시와 사람 발표 (서하 시)

김욱진 2013. 5. 31. 13:16

 

 

아홉이라는 수

 

서하

 

어떤 선배 시인이 아홉 번 째 시집을 보내주었다

날 확 땡긴 아홉이라는 수, 내 옛 서랍 속에도

흉가 같은 아홉수가 여럿 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면소재지 마을 점방에서

아버지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동양화 전공’으로 피어나던 끝자리 아홉 수,

가보(かぶ)를 가보(家寶)인 듯 쪼아 붙인 시뻘건 눈빛!

그 눈빛, 집에만 오면 죽어버리는 화분 같았다

 

아홉 살 햇무 같은 종아리에 챙챙 감기던 별빛회초리,

-그건 안 돼, 하지마, 하지마!

열아홉 살, 버벅! 뜻밖의 사고로 참 깊이 아팠던, 지금도 아련한 첫사랑,

스물아홉 살, 보따리 싸 친정 가던 날밤, 시골버스 앞을 가로막던 폭설,

서른여덟 살보다 아둔했던 서른아홉 살도 절뚝절뚝 다녀갔다

 

내게 아홉이라는 수는

밤길 서성이다 아까시나무에 머리채 잡힌

아린 달빛이었다

 

 

 

 

출처 : 대구시인협회
글쓴이 : 겨울판화(박윤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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