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09 23:07
반나절 봄
소리, 파시, 미카 이름을 가진 기차 아지랑이 언덕 넘는 반나절 봄이 있다
KTX가 서울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해도 시간이 남는 반나절 봄이 있다
버들가지 물 위에 졸고, 풀밭에 늘펀히 앉아 쉬는 반나절 봄이 있다
고운 나이에 세상 등진 외사촌 동생 순자 생각나는 반나절 봄이 있다
어린 마음 떠나지 못하고 물가에 앉았는 반나절 봄이 있다
―도광의(1941~ )
짧다. 싸맸던 목도리를 풀고 곧바로 반팔 옷을 입는다. 봄꽃들 피는가 싶어 좀 들여다보리라 맘먹고 있는데 어느덧 잎사귀만 퍼렇다. '봄'이라는 시간의 이름. 봄만 그러랴. '청춘'이라는 생애 한때의 이름. 한나절도 아니고 반나절이라니.
'반나절'이라는 그 음감과 뜻 속에는 차라리 깊고 긴 심연의 느낌이 깔려 있지 않은가.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좀 긴 시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그 시간의 크기를 알기에 차라리 영원을 추구해 보자는 심사다.
저 기차 미카다… 저 기차는 파시다… 그렇게 호명하며 기차 구경을 하던 시절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졌고 지금은 시속 200㎞ 넘는 쏜살의 기차가 지난다. 반나절만 살다 간 동생도 있다.
한 노인이 그 언덕에 다시 앉아서 시간의 터널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아쉬움이 반, 쌉쌀한 미소가 반이다. 버들가지가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우리 전 생애의 길이는 반나절쯤이라고 규정해 보고 싶은 찬란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