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신혼방
어둠 훔쳤다
사랑의 짐 보따리 하나 달랑 걸머지고
야반도주해서 머문 곳,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은 무거움
늪가에 풀어놓자, 어둠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애당초 싹 틔우지 말아야 한다는 셈법부터
늘그막에 어렵사리 만나 찾아간
어느 암자 한 모퉁이 마주서서 새겨들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다 죽어라’는
은행나무보살의 주례 말씀까지
고요 깃든 물빛 속에 그림자 되어 환히 비쳤다
짐승 두 마리
갈대숲 어슬렁거리다
연리지 같은 나무기둥 부둥켜안고
이제, 왔던 그 길로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홀로 선 재두루미 앞에서 속삭이는 사이
늪의 빗장 걸어 잠그는 그믐달빛
밤새 신혼방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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