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채널

우포늪 신혼방

김욱진 2013. 10. 17. 20:32

      우포늪 신혼방

 

 

 

 

어둠 훔쳤다

사랑의 짐 보따리 하나 달랑 걸머지고

야반도주해서 머문 곳,

누군가 뒤따라오는 것만 같은 무거움

늪가에 풀어놓자, 어둠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애당초 싹 틔우지 말아야 한다는 셈법부터

늘그막에 어렵사리 만나 찾아간

어느 암자 한 모퉁이 마주서서 새겨들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다 죽어라’는

은행나무보살의 주례 말씀까지

고요 깃든 물빛 속에 그림자 되어 환히 비쳤다

짐승 두 마리

갈대숲 어슬렁거리다

연리지 같은 나무기둥 부둥켜안고

이제, 왔던 그 길로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며

홀로 선 재두루미 앞에서 속삭이는 사이

늪의 빗장 걸어 잠그는 그믐달빛

밤새 신혼방 빼꼼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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