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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

김욱진 2010. 5. 23. 09:12

소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

 

대구제일고 교사 김욱진

 

고도의 산업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비인간화, 인간소외를 경험한다. 근대사회의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소외`이다. 소외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성 상실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칼 마르크스(1818~83)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 즉 인간성이 노동에 있다고 강조하며,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과 인간을 분리함으로써 소외 현상을 양산했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빼앗김으로써 인간의 참다운 본질과 가치에서 스스로 소외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외는 현대 사회의 산물로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다. 기계의 힘은 사람의 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증대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경고한 바와 같이 산업사회에서의 핵심적 일은 기계가 도맡아 하고, 사람은 한낱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진정한 행복을 영위하게 하고자 고안해낸 기술문명이 도리어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킨 것이다. 농경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회가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 되면서 전통적인 인간 유대의 붕괴가 급속도로 나타났다. 현대 이전 사회에서는 한 인간이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서 친밀한 인간적 유대가 있었으나, 농경공동체가 해체되고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 되면서 인간은 소수의 가족 이외의 다른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존재로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소외현상을 낳는 주요인이다. 여기서는 인간 소외로 인해 야기된 오늘날 사회문제들 중 현실성 있는 몇몇 사례 즉, 사회적 범죄․왕따․자살․노인 문제 등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사회적 범죄

단적인 예로, 조승희씨의 미 버지니아대 총기난사 사건은 인간 소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켰다. 인간 소외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적 차원의 문제인지, 현대 사회에 들어와 불거진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인지에 대한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여기서는 단지 사회 심리적 측면만 조명해보기로 한다. 사회 구조가 변화하면서 현대인들은 소수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단절된 채 살아간다.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은 어떤 계기로든 좌절감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도움을 청할 사회적 안전망을 쉽게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겪은 좌절과 소외의 고통이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낯선 세상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이어져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는 이민 1.5세대로 편안한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래토록 지속된 이러한 고립감은 무차별적 파괴 심리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에서는 소외를 고립감, 무의미함, 무기력, 불화, 도덕 기준의 상실 등을 동반하는 ‘감정의 메마름’이라고 설명한다. 감정의 메마름 상태를 치유하고 타인과 친밀함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호 소통이 필수적이다. 성장기에 따뜻한 대화와 배려를 통한 소통의 방식을 학습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명령과 비난에 노출된 경우 성인이 된 뒤에도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기 쉽다. 나만 동떨어진 섬과 같다고 느끼는 소외의 심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정서다. 하지만 이 심리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특히 자신의 삶을 타인의 가치관에 지나치게 끼워 맞추려 할 경우 질병으로까지 확산될 우려마저 있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이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미래에 대한 건전한 비전을 제시해 주는 공동체를 찾아 함께하려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가족ㆍ교회ㆍ인터넷 동호회ㆍ동창회 등 편안하고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한 공동사회 내지 1차 집단적 활동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소통하며 낯선 세상 속에서 느꼈던 소외의 고통을 치유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2. 왕따 현상

1998년 ‘학교에서 나오는 귀신’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여고괴담>이 청소년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 <여고괴담>이 크게 흥행하게 된 이유는 극적인 흥미를 갖췄다는 점도 있지만, 그간 사각지대에 방치해 온 비인간적인 학교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청소년의 자살 시도에 대한 뉴스도 잦다. 최근 들어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라고 하는 따돌림 현상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왕따 현상은 대화 거부나 약점을 들추어내어 모함을 한다거나 은근히 혹은 공개적으로 비난을 하기도 하고, 따돌림의 대상으로 고립시킬 목적으로 그와 가깝게 지내려는 다른 집단 구성원을 괴롭히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또래집단 즉, 친구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행동 혹은 가치관의 준거집단 역할을 한다. 이러한 또래집단은 청소년들 개개인의 중요한 정서적 기반이자 안식처가 된다. 또한 또래집단을 통해서 장차 사회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또래집단에서 소외를 당하여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준거집단에서의 박탈이고 정서적 기반과 활동무대에서의 소외인 셈이다. 이는 어른들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소외당한 청소년은 상처와 충격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또한 그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중시 여겨왔다. 어릴 적부터 또래집단 속에서 자라야 할 청소년들이 소외당하고 폭행당한다는 것은 그 청소년들에게는 큰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 학교나 친구관계에서의 따돌림이 청소년들의 자살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것도 그 까닭이다.

3. 자살 급증

개인의 사회적 소외는 자살로 이어지는 빈도가 높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산업화와 고도성장 중에 발생한 경제 불황과 급격한 사회변동, 전통적인 사회규범의 약화 등으로 인한 아노미 현상으로부터의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자살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인구고령화, 가족문제, 고독, 비관 등의 개인 심리적 요인과 생활고, 디지털화, 명예훼손, 인간관계문제, 인터넷 자살 사이트의 범람 등의 사회 경제적 요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노인들이 고독, 질병, 빈곤 등의 문제로 시달리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60대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은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노인 자살은 보편화 되었으며, 2000년 후 지난 5년간 노인 자살률은 5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노년층의 자살은 경제적 어려움과 소외로 인한 우울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노년층의 우울은 식민시대와 전쟁, 극심한 가난, 고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자녀 뒷바라지에 몰두하다 노후 대비에는 소홀히 한 데 있다. 핵가족화 진행으로 자녀와 떨어져 사는 것도 큰 원인일 것이다.

또한 경제 빈곤으로 인한 자살의 증가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할 만큼 심각하다. 이러한 이유로 40대 가장들이 많이 자살을 시도하고 실제로도 가장 많이 죽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용불량, 실업, 생활고 등을 겪다가 끝내 가족전체가 동반 자살하는 경우도 많아서, 경제적 문제로 인한 자살은 사회적 책임이 수반된다. 최근 한국사회는 급변하는 가운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적인 요구에서 도태되어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좌절감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살도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즉, 디지털 시대 속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정신으로 살아가고자하는 소수자들이 설 땅이 너무 좁다는 의미이다.

4. 노인 문제

현대사회에서의 소외 현상은 심각한 노인 문제를 초래했다. 노인이 왜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는가를 단순히 노인 자신의 문제로 볼 수도 있으나, 누가 노인을 소외 계층으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분명 개인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이 노년기를 맞는 것은 생의 자연스러운 단계이지만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노인의 지위와 역할은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예전엔 한 가정에 노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명예가 되었고, 심지어 나라에서 70세 이상 노인에게 '노인직'이라는 벼슬을 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노인들의 입지는 어떠한가? 싸늘한 동사체로 발견되는 독거노인이 있는가 하면, 버려지는 노인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병든 몸을 비관해 자살을 택하는 극단의 모습이 우리 사회 현실이다.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난 노인들의 소외문제는 오늘날 중대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농경 사회에 있어서는 토지가 가장 큰 자산이었으며, 이는 당연히 집안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노인이 소유하게 되었고, 이러한 소유권은 자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한 개인의 경제력을 결정하는 현대 사회에 있어 노인은 경제력을 상실하고 자녀에게 의존하다 보니, 자녀에 대한 영향력이나 통제권도 자연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소득이 없어지거나 현격히 줄어든 노인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고,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기회의 박탈은 결국 노인의 사회적 유대나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 버렸다. 또한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지금의 노인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노후 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과거에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에는 일을 해서 아이들 학교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에 급급했다. 그래서 자신의 노후를 위해 모아둘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노후에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자식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먹고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의 부모를 돌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노인 인구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노인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미흡하다. 현재 경제발전과 젊은 층의 교육을 위한 제도나 인식은 크게 진전이 되어 있지만, 노인 소외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이슈&논술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