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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 논쟁

김욱진 2010. 5. 23. 09:10

작은 정부 논쟁

-성장이냐 분배냐

대구제일고 교사 김욱진

 

작은 정부․큰 정부 논쟁은 시대 상황에 따라 제기되는 예민한 문제로써 인간이 잉여 생산을 시작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풀지 못한 난제이다. 어느 시대에는 효율성에 기초한 성장이, 또 어느 시대에는 형평성에 근거한 분배가 중시되기도 했다. 가령, 산업혁명 이후 세계 흐름은 아담스미스의 자유 시장 경제 원리에 기초한 작은 정부론이 대세를 이루었다면, 대공황 이후는 중앙 계획 경제 원리에 기초한 큰 정부론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치적 이념 대립이 심했던 20세기는 작은 정부․큰 정부 논쟁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정부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진보적 입장은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보수적 입장은 시장 메커니즘을 중시 여긴다. 다시 말해, 진보주의자들은 상대적 누진 과세와 복지 지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그 부작용을 경계한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나타나는 독과점․외부효과․환경오염․빈부격차 등의 시장 실패 현상을 문제시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인 정부 실패 현상을 문제 삼는다. 정부 역할을 둘러싼 논쟁은 이처럼 이론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보다 가치 판단과 효율성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시장에서 ‘공평한 소득 분배’와 ‘효율적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정부 개입의 정당성이 생긴다. ‘무엇이 분배 정의냐’는 가치관의 문제가 내포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반면 ‘효율성’ 논쟁의 배경에는 정부 능력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있다. 정부의 개입이 국가 경영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의 역할 정도는 이념뿐만 아니라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설사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 성향의 정부라 하더라도 정책 수단이 부족하면 정부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의 역할 정도에 관한 시대 조류는 정부 능력에 대한 평가를 반영한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서구 국가들에서는 안정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꾸준한 성장 덕분에 복지 재원의 여유가 있었고 정부의 경제 안정 능력에 대한 신뢰도 컸다. 그러나 석유 파동, 높은 인플레이션, 낮은 생산성 등으로 얼룩진 1970년대를 겪으며 유권자들 사이에는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 값을 못한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이런 가운데도 스웨덴과 같이 큰 정부의 틀을 유지하는 나라가 없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선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보수적 입장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등장한다.

작은 정부란 시장과 경제 등 사적 영역에서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정부는 치안과 안전 등의 역할 수행에 그쳐야 한다는 19세기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초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볼 때,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가 거래되고 해결되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낳으며, 정부의 간섭은 오히려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몫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 경제 성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사유 재산과 경쟁을 기본으로 하며,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 따라서 시장 경제는 일련의 경쟁 과정을 통해 이뤄지게 마련이다. 경쟁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것을 발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탐색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소득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결과의 불평등’은 어떤 경쟁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결과로 보는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한다. 그것은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 사유 재산 허용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분배의 몫을 크게 하기보다는 적은 양이라도 나누어가지는 데 중점을 두기에 그 분배 몫이 하향 평준화되고, 또한 어차피 돌아오는 몫이 같기 때문에 남보다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효율성이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곧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원인으로 작용했고, 나아가 1990년대를 전후해 나타난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작은 정부․큰 정부 논쟁의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19세기의 작은 정부와 현재의 작은 정부의 성격은 분명 다르다. 19세기의 작은 정부는 복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지만, 오늘날 작은 정부는 복지 정책의 실행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의 진전으로 시장 실패 현상이 나타나고, 사회 복지 개념이 등장하면서 작은 정부의 영향력이 약화되기도 했으나, 20세기 후반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작은 정부론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자본주의 진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없는 자, 극빈층 등 소위 서민들에 대한 복지 지원, 즉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안전망 구축은 큰 정부를 추구하는 국가든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국가든 간에 오늘날 모든 국가들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로 인식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세계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두환 정권 이래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정부들은 재정 지출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오면서도 작은 정부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과거 정부들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지난 해 초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현 정부는 “작은 정부 중의 작은 정부” 이므로 정부가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우리 정부가 발표한 재정 지출 규모는 GDP의 20%(2004년 28.1%, 한국은행 기준) 수준으로 우리나라 재정 지출 규모가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 정부의 주장은 곧바로 우리 사회 내부에 작은 정부․큰 정부 논쟁을 부추겼다. 국제 기준인 국제통화기금방식에 맞춰 추산한 우리나라 재정 지출 결과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2004년 우리 정부의 재정 지출은 국내총생산(GDP.779조 4000억원)의 37.9%로 조사됐다. 여기서 우리 정부의 재정 지출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유럽 복지국가보다는 작지만 미국(36%), 일본(37%) 같은 다른 지역의 선진국이나 태국(18,4%) 등 중진국보다 큰 수준으로 현 우리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재정 지출 규모 파악 시 대부분의 선진국은 정부 범위를 국제통화 기금 기준에 맞추어 정부와 지방 정부는 물론 산하 기관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정부가 지금껏 밝혀온 통계는 공기업 등 정부 산하 기관의 지출 범위는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작은 정부․큰 정부 논쟁은 곧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성장과 분배는 분명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할 때만 가능하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분배를 강조할 경우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달성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큰 정부는 대체로 복지 지출에 치중한다. 그리고 복지와 같은 소비성 지출은 경제 성장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하다. 또한 복지 지출은 정부로부터 수혜를 받는 사람들을 정부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복지 지출 규모의 지나친 확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부의 ‘보이는 손’만 쳐다보며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부정적 요인이 된다. 다른 한편 이들의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세금을 부담해야만 하는 대다수 납세자들의 경우에도 일할 의욕이 상실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국민들 간의 이질화 내지 사회적 갈등의 요인을 낳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 대 80’이니 ‘10대 90’이니 하는 말로 이러한 갈등을 고의적으로 조장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비용이다.

분배 우선론자들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 기능에만 던져놓을 경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빈부 격차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복지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소득 분배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시장 경제는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부익부 빈익빈’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하면 부유해질 수 있는 체제이다. 그래서 시장 경제에서 부익부는 일어날 수 있지만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다만, 상대적 빈곤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다. 이는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의 도입이나 투명한 경쟁 체제의 확립 등으로 분배 우선론자들이 우려하는 상대적 빈부 격차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해온 국가일수록 국민 소득이 높고, 절대 빈곤층이 적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국가의 저소득층 평균 소득이 분배를 강조하는 복지 지향 국가의 저소득층 평균 소득보다 높다는 사실에서도 증명이 된다. 경제학자 노턴이 1970-90년에 걸쳐 20년 동안 7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제 성장과 빈곤의 관계에 대한 실증 분석(2002) 결과를 보면, 경제 성장은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소득과 삶도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유독 시장 경제에서만은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 비난이 집중된다. 이는 소득의 불평등을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 서구국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대처와 레이건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 지향'을 적극 추진한 바 있다. 이는 지난 20세기의 큰 정부․작은 시장의 실험이 실패하였음을 반증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작은 정부’로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복지 지출을 축소하면서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줄이는 한편 민영화를 추진하고 공무원의 수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이와 더불어 세금 인하도 단행하고 있다. 법인 세율과 소득 세율을 대폭 낮추면서 단일 세제(Flat Tax) 방향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 ‘큰 정부’로 가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는 ‘큰 정부’가 건강하고 성공한 나라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큰 정부에서 지출이 늘어 재정이 악화되고 국민들의 부담은 늘어 성장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복지 병에 걸렸던 서유럽 국가들의 실상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큰 정부․작은 시장에서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은 근로와 투자 의욕이 저하되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의타심에 빠져 경제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무기력해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무기력증에 빠진 경제와 사회는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작은 정부․큰 시장으로 가는 것이 바로 현재의 시대정신이며, 차기 정부의 당면 과제다.

(이슈&논술 200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