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詩社
문태준
시인이랍시고 종일 하얀 종이만 갉아 먹던 나에게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행복이 생겼다
내가 찾고 벌레가 찾아
밭은 나와 벌레가 함께 쓰는 밥상이요 모임이 되었다
선비들의 정자 모임처럼 그럴 듯하게
벌레와 나의 공동 소유인 밭을 벌레 시사라 불러 주었다
나와 벌레는 한 젖을 먹는 관계요
나와 벌레는 무봉의 푸른 구멍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일한 노동은 단단한 턱으로
물렁물렁한 구멍을 만드는 일
꽃과 잎의 문장의 숨통을 둥그럽게 터주는 일
한 올 한 올 다 끄집어 내면 환하게 푸르게
흩어지는 그늘의 잎맥들
2006 소월시 우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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