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굴뚝의 정신/고진하

김욱진 2013. 12. 29. 13:55

굴뚝의 정신

고진하

 

 

저 나지막한 함석집, 저녁밥을 짓는지 포르스름한 연기를 굳게 피워올리며 하늘과 내통(內通)하는 굴뚝을 보고 내심 반가웠다 거미줄과 그을음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창틀에 올망졸망 매달린 함석집 아이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 그 단음(單音)의 구슬픈 피리 소리도 곧장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천진한 동심(童心)은 목이 쉬지 않고 저처럼 쉽게 하늘과 연통(連通)하는구나! 아 아직 멀었다 나는 저 우뚝한 굴뚝의 정신에 닿으려면! 잘게 지핀 욕망의 불 아궁이 속으로 지지지 타들어가는, 본래 내 것이 아닌 살, 하얀 뼈들 지지지 다 타고 난 하얀 재마저 쏟아버리지 못하고 다만 무심천변(無心川邊)에 우두커니 서서 저녁밥 짓는 포르스름한 연기 피어오르는 저 우뚝한 굴뚝을 바라만 보고 있는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레 詩社/문태준   (0) 2013.12.29
양지바른 사월의 향기로운 날에  (0) 2013.12.29
중독/박남희  (0) 2013.12.29
접시라는 이름의 여자/송찬호   (0) 2013.12.29
밀입국/박주택  (0)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