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라는 이름의 여자
송찬호
한때는 저 여자도 불의 딸이었다
불꽃이 그녀의 일생일 줄만 알았고
사랑만이 오직 불순물처럼
그녀의 일생에 끼여들 것으로 알았다.
여자는 언제나 열심히 접시를 닦는다
거품 속에서 여자는 잠시 행복해진다
거품 속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은 것처럼,
접시의 당초무늬가 퉁퉁 불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진다
그런 그녀가 잠시 외출 나와 창가의
내가 즐겨 앉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보았다 잠시 나는 점잖게 미소만 띄워보냈다
여자의 손톱 밑에서 양파 냄새가 배어나오고
설사 그녀가 읽는 책 속에서 내가 싫어하는 카레 요리가
쏟아져나온다 했을지라도 그렇게 나는 미소만 띄워보냈을 뿐이다.
여느 성미 급한 손님처럼
종업원을 불러 이렇게 소리치지도 않았다
여기 이 먹다 버린 지저분한 접시 좀 빨리 치워주시지 않겠습니까?
단지 나는 맞은편에 조용히 다가가
넌지시 이렇게 속삭였을 뿐이다
부인, 지금 집에서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답니다
오후 여섯시, 마요네즈 군대가 쳐들어온다
토마토 군대가 쳐들어온다
그 끔찍한 남편과 아이들이 쳐들어온다
-송찬호, "접시라는 이름의 여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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