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박남희
참새가 날아가다 나무에 앉는다
나무는 참새를 아주 붙잡지 못한다
참새는 선뜻 구름위로 날아가
그 위에 앉지 않고
다시 땅으로 내려 앉는다
무게에 중독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나무가 기억하는 건 참새가 아니라 흙이다
나무는 제 몸에 무수한 빛의 전율을 느끼며
흙에 오래오래 뿌리를 박고 있다
흙은 나무가 온 몸으로 느끼는
짜릿한 감촉을 즐기고 있다
나무가 흙에 중독되어 있는 동안
참새가 구름까지 갔다가 땅으로 내려앉는 동안
지구는 참새와 나무와 흙을 떠메고
자신이 중독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지구는 1년에 태양 주위를 어김없이
한 바퀴 돌면서 제 몸에 피톨처럼 숨어있는
문명에 중독된 문자들이
왜 수많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지
그 때마다 근질근질 제 몸이 왜 자꾸 가려운지
곰곰이 생각한다
태양이 지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건
지구가 가려운 제 몸을 북북 긁고 있는 것이
애처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대시학>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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