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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화

김욱진 2010. 5. 23. 09:22

다원화

대구제일고 교사 김욱진

 

(가) 다원주의의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다원주의는 철학적으로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실재가 하나의 원리에서 도출되지 않고, 서로 근거가 될 수 없는 여러 층의 존재 근거에서 생겨났다고 파악하는 입장입니다. 다원주의는 사람이나 사물 등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실재를 아우르는 하나의 상위 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물리치면서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다수의 차원과 질서가 있다는 것을 주창합니다. 이를테면, 다원주의는 세계에 존재하는 실재들을 설명하기 위해 다수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입장입니다.

이를 좀 쉽게 알기 위해서 이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들여다봅시다. 학교에서 플라톤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idea)입니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만져지는 것만이 실재적이라는 생각에 젖어온 사람들의 선입견에 반대하면서 플라톤이 내세운 것이 이데아입니다. 책상은 책상의 이데아가 있고, 나무는 나무의 이데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데아란 사물의 원형이요 그 본질인 데 반하여, 사물이란 이데아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데아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이데아 중의 이데아’라는 하나의 원리에 포괄되어 있습니다. 플라톤은, 모든 실재는 바로 이 ‘하나의 유일 원리’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는 일원론(一元論)적인 견해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하나의 유일 원리’를 배제하자는 것이 다원주의입니다.

(나) 다원주의,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인정하기

지금까지 사상이나 문화, 예술 등 인간 역사의 중심은 ‘나’였습니다. ‘나’의 사상과 문화가 유일한 기준이었고, ‘나’가 예술적 아름다움의 유일한 척도였습니다. 이것만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만 있고 ‘여럿’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절대 권력을 휘두른 중세의 종교 권력과 근대의 정치 권력이 그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니 ‘여럿’이 실제로 존재해 왔고, 그것들이 유일한 것으로 믿어 왔던 ‘하나’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에워싸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시대가 끝난 것입니다. 이제 세계의 중심은 ‘나’가 아닙니다. ‘또 다른 나’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실재의 여러 극(極)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라는 폴 니터(Paul Knitter)의 말은 그래서 의미가 깊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여럿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다원주의이자 민주주의의 요체입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가 한 마을처럼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이중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체험의 하나는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방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상 등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먼 나라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어, (먼 나라의 사람과도) 마치 한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얼마나 ‘여럿’인지도 동시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고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지구촌’이라는 말에는 ‘하나’와 ‘여럿’이라는 대립적인 듯 보이는 개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나말고도 ‘여럿’이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원주의입니다.

(다) 현실의 실재를 인정하는 다원주의

현실 세계는 무생물과 식물 및 동물 등 수많은 실재(實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생물학, 고고학, 천문학, 인류학, 역사학, 물리학과 화학 등 과학의 경이로운 발달에 따라, 우주와 세계의 역사가 지난 세기까지 알려진 기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장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하나의 유일한 원천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이들이 구조적으로 서로 통하지 않는 다수의 원천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이들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 안에 환원시키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시인(是認)하는 입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에 존재하는 실재의 다원성은 역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원주의의 규범적 내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촌으로 변모한 세계에 사는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을 지닌 다원주의 세계를 어쩔 수 없이 다가온 운명적 현상으로 체념하면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다원주의 세계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가운데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자유롭게 계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라) 자연도 다양성을 좋아한다.

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습니다. 자연 속에는 선한 자, 약한 자, 미치광이, 절망에 빠진 자. 팔팔한 자, 병자, 곱추, 언청이, 어리석은 자, 이기주의자, 큰 것, 작은 것, 까만 것, 노란 것 등등이 다 있어야 합니다. 갖가지 종교, 갖가지 철학, 갖가지 광신, 갖가지 지혜를 가진 자들이 다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밭에 옥수수가 있는데 그 옥수수들을 가장 좋은 이삭의 수꽃술로만 인공 수분을 시키면, 아주 하찮은 전염병이 돌아도 다 죽어버립니다. 그에 반해서 옥수수 한 그루 한 그루가 저마다의 특성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 야생의 옥수수 밭에서는 전염병이 들 때마다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옥수수들이 스스로 찾아냅니다. 이처럼 자연은 획일성을 싫어하고 다양성을 좋아합니다. 자연은 바로 그 다양성 속에서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중에서)

(마) 다름을 인정하며, 합의하기

지난 전통 사회는 실재의 다원성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였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나의 지배적인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말미암아 일일생활권으로 변모한 현대 세계에서는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도(孤島)와 같은 폐쇄된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종교를 지켜나갈 권리를 서로에게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진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의 종교 행사 모습오늘날 지구상의 어떠한 개별 문화권에도 모든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적 목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일하고 폐쇄적인 사회 질서는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으며, 바로 그 자리에 다양한 이해관계와 확신, 그리고 행동 양식을 지닌 문화, 종교, 정치의 다원주의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과거의 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질서를 탈피하여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질서를 이룩한 현대사회는 이러한 다원주의를 특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문화적 다원주의는 하나의 사회 안에 둘 이상의 문화의 존재를 포함하거나, 하나의 주도적인 문화 안에 둘 이상의 하위문화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화적 다원주의의 중심 문제는, 서로 다른 문화 집단이 그들의 특유한 생활양식을 보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화적으로 반드시 단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문화의 상이성(相異性)을 허용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다원주의는 모든 문화는 각자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나아가, 종교적 다원주의는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많은 종교적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우리의 종교가 우리에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상징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그와 비슷한 확신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타당하리라고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종교적 신념이 궁극적으로는 종말, 즉 모든 인간의 여정의 종착역에 가면 서로 만나게 된다는 입장입니다. 곧, 기독교도는 기독교의 진리대로 불교도는 불교의 진리대로 각자의 종교의 전통을 심화시킨다면 예기치 못한 풍성함을 발견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길과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리라는 것입니다.

(바) 다원주의 사회의 새로운 갈등

다원주의 사회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사적인 영역이요, 다른 하나는 공적인 영역입니다. 과거 보편주의가 사회의 모든 가치를 결정할 때에는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모든 경우에 보편주의적 가치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뚜렷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사적인 영역은 완전히 사적 자치(自治)에 맡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사적인 영역에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서 공동체나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은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원주의 사회의 개인은 자기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다만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가치 판단이나 그에 따른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공적인 영역, 즉 공동체의 질서나 안녕에 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공동체의 간섭이나 규제를 받게 됩니다.

이처럼 공적인 영역은 대체로 구성원 모두의 이해와 관계되거나, 사회의 질서, 안녕, 복지 등과 관련된 영역을 말합니다. 이러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은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과는 달리 가치 결정의 문제가 복잡합니다. 이 영역에서 가치 결정이 특정 가치관에 입각하여 결정될 경우에는 두 가지가 문제됩니다. 첫째, 결정의 내용적 정당성 문제입니다. 설령 그 결정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하거나 담보해 줄 방안이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불만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가치관은 하나의 신념 체계이며, 그것이 대립할 경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투쟁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사) 다수의 결정만큼 소수와의 합의가 중요한 사회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의사 결정의 내용보다는 그 절차를 중시하게 됩니다. 내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공정한 절차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피하면서도 공동체 전체의 조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이해 조정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내용의 정당성보다 절차의 정당성을 더 중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절차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이른바 다수결의 원리입니다. 특히, 정치적 다원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문화나 종교는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비교적 드문 ‘사적 영역’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면 그만인데, 정치는 이와는 달리 ‘공적 영역’인 측면이 많아 단일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에 충돌의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곧,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다수성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갈등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다원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 정치적 집단에 제도화된 결정 과정에 이르기 위한 기본 합의를 요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다원주의는 두 가지 전제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해집니다. 하나는, 모든 정치적 집단이 공적 토론과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공동선이 동등한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제 1] 제시문 (라)를 참조하여 지방자치 제도의 의의와 장점을 생각해 보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설명해 보시오(600자 내외). -2008 경북대 논술 예시문항 발췌-

➲ 위 논제는

두 가지 논점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논점은 지방자치 제도의 의의와 장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인데, 이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고’라는 말은 생각한 바를 설명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점은 첫 번째 논점에 근거해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되겠다.

(논제1 분석)

제시문 (라)의 주제는 다원주의적 자연관이다. 서두에서‘자연의 힘은 다양성 속에 있다.’고 밝히고, 다양성의 장점과 획일성의 단점을 옥수수라는 농작물의 예로 설명하고 있다. 같은 종의 옥수수는 품종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하찮은 전염병에 쉽게 멸종될 위험성이 있지만, 다품종이 함께 자라는 야생 옥수수는 자신들의 다양성을 발휘함으로써 각종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과 자생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수 품종의 옥수수는 중앙 정부에, 야생 옥수수는 각 지방 자치 단체에 비유된다. 우수 품종만을 재배하는 옥수수 밭처럼 중앙 정부에 의해서만 관리 운영되는 국가는 특정의 문제가 발생할 때 효과적인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 그러나 야생 옥수수 밭과 같이 여러 지방 자치 단체가 공존하는 국가에서는 다양한 특성들을 종합 고려할 수 있기에, 특정 문제에 대한 능동적 해결력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논제 2] 제시문 (바)의 밑줄 친 부분은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소 방안을 제시문 (사)에서 강조하고 있는 다수결 원리와 토론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논하시오(800자 내외).

➲ 위 논제는

특정 단락의 밑줄 친 부분과 관련지어 묻고 있다. 이 논제는 얼핏 보면 하나의 논점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두 가지 논점에 대한 답을 요구한다. 다원주의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에 대한 해소 방안으로 다수결 원리와 토론이라는 두 관점을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은 이 두 원리의 명확한 이해와 아울러 이의 상관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논제2 분석)

제시문 (바)는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밑줄 친 부분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주된 문제점 두 가지를 밝힌 것이다. 즉, 결정의 내용적 정당성 문제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불만에 대한 처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제시문 (사)에서 강조하고 있는 민주주의 원리, 즉 다수결 원리와 토론이라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소수 의견을 무시하고 수적 우위만을 무조건 강조하는 다수결은 비민주적이다. 다수결 원리는 진정한 토론 절차를 통하여 소수의 의견이 반영되고 설득과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다수결은 오히려 독재나 소수의 지배를 합리화할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시문 분석

제시문은 다원주의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다. 다원주의의 철학적 배경에서부터 현실적 수용 및 그에 대한 사례, 나아가 문제점과 대책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해서 설명하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다원주의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데아를 강조한 플라톤 같은 일원론자는 ‘세상에 참된 존재 내지 근원적 존재는 오직 하나’라고 보는 반면, 다원주의자는 그러한 존재가 하나 이상이라는 입장이다. 즉, 다원주의는 세계의 근본원칙이나 근원요소, 근원존재는 다수로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환원되지 않고 서로에게서 도출되지 않으며 하나의 무엇인가로 통일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다)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인식의 현실적 수용을 밝히고 있다. (나)에서는 중세와 근대를 지나 오늘날 세계화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 변천 과정 속에서 세계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 엄연히 공존함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다)에서는 이러한 역사 변천 과정 속에 실재하는 다원주의의 능동적 수용을 통한 인류의 정체성 확립을 강조한다. 이러한 다원주의의 한 사례로, (라)에서는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가 쓴 ‘개미’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동종의 옥수수보다 다품종이 자라는 야생 옥수수가 훨씬 높은 자생력과 저항력을 가져 생명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작가가 다원주의적 자연관을 가졌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마)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다원성이 실재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여러 종교들의 상호 인정을 통해 하나로 승화될 수 있음을, 문화적 다원주의 역시 고유성을 지닌 여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음을 각각 밝히고 있다. 한편, 제시문 (바)에서는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누어 제기하고 있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두 가지 문제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어, 제시문 (사)에서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으로 진정한 토론을 통한 다수결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논제1 예시답안

아무리 우수한 개체라고 하더라도 다양성을 지니지 않으면 현실적 위기 극복에 한계가 따른다. 왜냐하면 획일성은 차별성을 통한 상호 보완 기능과 다양한 대안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중앙 정부의 능력이 아무리 탁월하다하더라도 모든 행정 업무가 한 곳에 집중되면, 개별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따라서 자치와 분권의 원리에 충실한 지방 자치제가 중앙 집권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한 면이 많다. 지방 자치제는 각 지역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음으로써 자기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의욕을 향상시킨다. 그리고 각 지역의 다양한 행정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발전된 국가 행정 방향을 수립할 수 있다. 한편, 지방 정부를 중앙 정부의 부수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에 있어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의 행정 업무만을 단순히 보완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역할만으로 부족한 업무에 일정 부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중앙 중부와 지방 정부의 관계는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국가 경쟁력 함양이라는 견지에서 공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논제2 예시답안

다수결 원리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다. 이 경우 전제해야 할 것은, 각자의 주장은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내용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동등한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통합의 문제를, 주장의 질이나 가치는 등한시하고 양이나 수로 해결하고자 하는 제도가 다수결이다. 하지만 다수결에서 소수는 항상 무시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수적 결정에 의한 통합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초래한다. 이것은 전제로서의 각자 주장의 평등성에 어긋난다. 이러한 전제와 결과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조정 방안이 다수결 원리의 본질인 토론이다. 토론 과정을 통해서 소수 의 의견이 반영되고 나아가 설득과 타협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다수결의 원리는 국민 의사의 통합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는 자칫하면 오용될 위험성도 있다. 즉, 다수결은 이를 밑받침하는 토론 과정의 성격 여하에 따라 민주적 절차가 될 수도 있고 비민주적 절차로 전락할 수도 있다.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의 다수결은 도리어 독재나 소수 지배를 위장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해서 반드시 최선의 방안이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차적 정당성의 한계를 근거로 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유명무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점을 깊이 인식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뿌리내리는 데에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이슈&논술 2008.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