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오래된 땅/김기택

김욱진 2013. 12. 29. 14:29

                                          오래된 땅

                                           김기택

 

 

살갗 밑으로 푸른 뿌리들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팔뚝에서 손등으로, 목에서 이마로 가지 치며 뻗어가고 있습니다. 거죽 밖으로 나오려는 굵은 뿌리를 살가죽이 간신히 누르며 덮은 곳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눈알도 붉은 잔뿌리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살도 오래된 땅이라는 듯 비바람에 패이고 그 주름고랑으로 땀 흘러내리고 그 위를 들풀 같은 털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물컹물컹한 살은 안에 감추고 거죽은 황야처럼 한껏 질겨지고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았다가 밀어내는 흙길처럼 손바닥 닿는 자리에 두툼한 주름살이 만져집니다. 쭈글쭈글하다는 건 살가죽과 속살 사이에 팽팽하던 공기가 빠지고 그 자리에 허공이 가득 들었다는 것이겠지요.

 

 * 2005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시 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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