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틈, 사이/복효근

김욱진 2013. 12. 29. 15:51

 

                       틈, 사이

                    복효근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 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에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있어

그 틈,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은 작은 틈,사이가

찻물을 새지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 없는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단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비/정일근  (0) 2013.12.29
그리운 악마   (0) 2013.12.29
다시 별 헤는 밤/김재진  (0) 2013.12.29
들국화/곽재구  (0) 2013.12.29
섬 2 ---病 /송재학   (0)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