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무등을 보며/서정주

김욱진 2015. 11. 7. 11:39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에 대하여/이성복  (0) 2015.11.10
담쟁이/도종환  (0) 2015.11.07
나무와 마디/박주일  (0) 2015.11.07
시인이 되려면/천양희  (0) 2015.11.06
죽도 시장 비린내 외 1편/문인수  (0)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