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엄, 화엄
반칠환
모든 꽃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핀다
꽃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절벽이다
온 산에 참꽃 핀다
여리디여린 두엄 잎이 참 달다
출렁, 저 황홀한 꽃 쿠린내
모든 존재가 아름다운 건
꽃잎의 날보다 두엄의 날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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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칠환 /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웃음의 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전쟁광 보호구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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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떨기 꽃에서 우주를 보는 것, 즉 일즉다 (一卽多) 사상은 동양의 시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 시는 두엄을 화엄과 나란히 놓았다. 끝에 엄자 돌림? 때문에 재미있다. 삶은 두엄이고 화엄이다.
시를 쓸 때 불교가 편한 것은 어떤 것을 갖다 대도 다 말이 되고 깊이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칫 관념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 할 수밖에 없다. 개화와 절벽이 이어지고, 참꽃이 두엄 잎이 되고, 황홀이 쿠린내이다.
미당의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소망”을 아시는지? 소망은 농사를 위해 거름으로 받아놓은 오줌통이다. 그 위에 뜨는 별! 인간의 가장 마지막 똥오줌에 가장 신성한 하늘의 별이 뜨는 만다라의 황홀!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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