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원구식(1955~ )
오늘밤도 혁명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뒤집는다.
돼지기름이 튀고,
김치가 익어가고
소주가 한 순배 돌면
불콰한 얼굴들이 돼지처럼 꿰엑꿰엑 울분을 토한다.
삼겹살의 맛은 희한하게도 뒤집는 데 있다.
정반합이 삼겹으로 쌓인 모순의 고기를
젓가락으로 뒤집는 순간
쾌락은 어느새 머리로 가 사상이 되고
열정은 가슴으로 가 젖이 되며
비애는 배로 가 울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세상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부분. 『비』. 문학과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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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구워진 삼겹살이 ‘혁명의 속살’이 되는 시간은 허구의 시간이고 소모의 시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일상을 중심에 두고 본다면 삼겹살을 둘러싸고 앉은 그 시간은 정반합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부정적으로 ‘소시민적’이라고 규정 내리지는 말자. 술집에서 입으로만 ‘세상을 뒤집는’, 이 힘없는 ‘대중들의 공포’야말로 정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불의 성질을 지닌 입자들’인 것이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삼겹살집이 존속하는 한 ‘혁명의 속살’은 지속될 것 같다.
노태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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