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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대구문학 11,12월호 김욱진 시 격월평-박남일 평론가

김욱진 2015. 12. 26. 21:05

         2015대구문학 11,12월호 김욱진 시 격월평-박남일 평론가

 

 

구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 지하철 1호선 종착역인 대곡을 빠져나가려던 참 / 구순 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 /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더니 / B2 버튼을 꾹 누른다, 지금 머물고 있는 / 여기가 오직 이승일 뿐이라는 생각 / 금세 저승까지 번지고 번져 / 열린 문 스르르 닫혔다 / 할아버지 눈치 보며 / 이승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엘리베이터 / 침 한번 꿀꺽 삼키더니 / 저승도 마다 않고 쏜살같이 달려갈 태세다 / 할아버지는 거듭  B2 버튼을 꾹꾹 눌렀다 / 닫힌 문이 열렸다 다시 닫혔다 / 이승에서 발 꽁꽁 묶인 엘리베이터 / 긴급호출 버튼에 빨간 불이 켜졌다 / 저승이 코앞에 닿은 그 할아버지 /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 환생하는 기차 어디서 타느냐고 / 내게 다급히 물었다

                                                                                             -김욱진, 「환승」

 

블랑쉬(비비안 리)가 뉴올리언스 '욕망'의 거리에서 전차를 타고 '묘지'의 거리에서 열차로 갈아탄 후 '천국'의 거리에 있는 "에드거 앨런포나 살 수 있을 만큼" 궁뚱망뚱한 동생 집을 찾아가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etcar Named Desire」의 들머리가 생각난다. 지하 이층 승강기를 타고서 B2 누름단추를 연거푸 눌러대는 눈 침침한 낡은이에게서, 시인은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는 노인의 몸부림을 본다. 시인의 화살은 여지없이 과녁의 한중간을 맞히었다. 지하 이층이 이승이라면 그 위층은 저세상 아니고 무어랴. “저승이 코앞에 닿은 그 할아버지”에게 환승이 대수랴, 환생이 발등의 불인 것을. 서른 날에 아홉 번밖에 못 웃는三旬九笑 나를 웃게 한 시여.